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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Aug 16. 2023

370년 전 제주도에 떠밀려온 사람들

17세기 조선의 사회상을 그려볼 수 있는 『하멜 표류기』

세계가 모두 하나로 연결된 요즘 같은 시대에도 해외여행을 가면 모든 것이 신기하고, 긴장되고, 설레는데 370년 전 서양인들이 무역선에서 태풍을 만나 승무원 절반이 죽고 절반이 살아남아 표류하다가 우리나라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스페르베르호는 1653년 7월 30일 대만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이었다. 배는 태풍을 만나 좌초되었고, 8월 16일 제주도로 떠밀려왔다. 나가사키에서 스페르베르호를 기다리던 네덜란드 관리들은 늦어도 9월 말이면 도착해야 할 배가 오지 않자 실종 1년이 지난 1654년 10월 배와 선적 화물을 결손 처리하고, 배에 승선했던 64명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 모두가 잊고 있었던 그들은 13년 만인 1666년 일본에 나타났고, 그들이 낯선 나라에서 겪은 모험담이 본국 네덜란드에서 출간되었다. 


『하멜 표류기』로 알려진 『1653년 바타비아발 일본행 스페르베르호의 불행한 항해일지』가 그것이다. 이 책은 생각보다 엄청난 인기를 끌어 1670년 파리, 1671년 뉘른베르크, 1704년 런던 등에서 출간되었고 18세기와 19세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신판을 찍어낼 정도였다. 이 책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은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한 기록은 거의 유일해서였을 것이다. 


하멜이 처음 도착한 곳은 제주도 해안가 강정 부근으로 추정되는데 하멜기념비는 용머리해안에 세워져 있다. 하멜 일행은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고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8월 21일 제주 목사 앞으로 끌려온 그들은 다국적(?) 역관이 동원되어 의사소통을 한 후 관청에 억류되긴 했지만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계속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한 일행 중 6명이 1654년 5월 조선 어선 하나를 훔쳐 달아나려다가 붙잡혀 관가에 끌려가 곤장을 맞기도 했다.

『하멜 표류기』스티히터 판본에 실린 목판화

결국 제주에서 계속 머물게 할 수 없었던 관에서는 그들을 서울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1654년 6월 드디어 제주를 떠나 서울로 향한다. 효종과 만남 후 하멜 일행은 훈련도감에 배치되어 복무를 하게 된다. 당시 조선에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일본으로 항해하다가 표류해 1627년 제주도에 도착해서 조선에 정착한 박연이 있었다. 자기들과 비슷한 외형의 사람이 태연히 조선의 복장을 하고 나타나서 통역을 해주고, 생활을 도와주니 그들에게는 큰 위안과 도움이 되었으리라. 


『하멜 표류기』는 서양인의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대해 다소 불쾌한 선입견을 기록한 부분이 꽤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실록 등 국내 사료와 비교하면서 17세기 조선의 생생한 사회상을 그려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참고. 다시 읽는 하멜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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