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삶보다 운 좋은 삶이 낫다?

노력이 중요할까? 운이 중요할까? 영화 <매치 포인트>

by Rosary

공정(公定)이니 정의(定義)니 하는 것들을 찾아 지금까지 달려온 나와 동년배인 X세대들과 달리 그런 것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일찌감치 알아차려버린 2030들의 생각의 거리는 상상 이상으로 먼 것 같다. 사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공정과 정의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깨닫는 중이지만 출발선이 다르게 그어진 곳에서 경주에 뛰어든 청춘들이 겪는 좌절과 체념이 안쓰럽고 미안할 뿐이다.

영화 <매치 포인트. 2005>를 처음 봤을 때는 섹시한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와 스칼렛 요한슨의 아슬아슬하고 숨이 막힐 듯한 불륜(?) 서스펜스에 온통 시선이 사로잡혔었다. 감독이 우디 앨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독하게 통속적인 치정극에 빠져들고 말았다. 부잣집 애인을 둔 가난한 남녀 주인공들은 장밋빛 인생을 눈앞에 두고 서로의 매력을 거부하지 못하고 위험한 관계를 이어가는 게 이해가 되면서도 답답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다시 본 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왔다.

가난한 테니스 코치 크리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배우로서 잘 풀리지 않은 노라(스칼렛 요한슨)를 위로하며 “뭐든 운이 따라야 하지. 노력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운이란 걸 인정해야 해. 과학자들조차 모든 사물이 전적인 우연에 따른다고 믿지. 의도나 계획은 상관없어.”라고 하자 크리스의 여자친구인 부잣집 딸 클로에(에밀리 모티머)는 “난 운은 안 믿어. 노력이 중요하지.”라고 대꾸한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일수록 ‘노력’이나 ‘하면 된다’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들이 가진 것들이 운의 산물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생활할 때 한국에서『아프니까 청춘이다. 2010』가 2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걸 알고 베스트셀러라고 모두 좋은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이 엄청나게 팔릴 만큼 대중에게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리 청년들이 이렇게나 순진한가 싶기도 하고, 어른이 돼가지고 그럴듯한 당의정으로 청춘들을 기만하는 느낌이라 영 뒷맛이 씁쓸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지금 손해를 봐도 나중에 돌아오는 게 있음을 믿었기 때문에 양보하고 배려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위로받던 청년들 역시 그걸 믿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곧 ‘공정과 정의’라는 기성세대의 말장난에 속았던 것에 대한 혐오와 환멸이 몇 배 더 큰 파도가 되어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미래를 기약하며 양보하기보다 현재에서 작은 손해도 거절하는 선택을 하는데 기성세대는 이런 태도를 ‘MZ세대’로 퉁치면서 수용하고 있다.


<매치 포인트>는 시작부터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를 던지고 시작한다. “사람들은 삶의 대부분이 운에 좌우한단 걸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 골몰하면 미칠 지경일 테니…” 20여 년의 시간이 흘러 미칠 지경에 다다른 2030들을 보면서 기성세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까. 그저 ‘MZ들이란…’ 하면서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 상책이 아니다.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고 사과하는 것이 먼저다. 의미 없는 ‘라떼 타령’만 해서는 마음의 장벽만 높아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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