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러 영화를 보았지만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있는 작품이 있다. 어떤 영화인지도 전혀 모르고 보고싶은 영화들 고른 후 시간에 맞는 영화라서 별 생각 없이 보게된 영화였는데 인생영화가 되었다. 독일의 플로리안 헨켈 폰 돈너스마르크의 문제적 데뷔작 <타인의 삶>은 유럽의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2007년 79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까지 수상한 수작이다. 이 영화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양측 동맹국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극에 달했던 냉전시대 1984년 서슬 퍼런 첩보와 감시가 극에 달했던 동독의 한 비밀경찰이 마음의 균열이 생기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리면서도 가슴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슈타지(동독 비밀경찰) 비즐러(울리히 뮈에 분)는 극작가 게오르크(제바스티안 코흐 분)를 감시하기 위해 베를린의 그의 아파트에 도청장치를 설치한다. 감정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냉혹한 비즐러가 게오르크와 그의 연인인 배우 크리스타에게 점점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감시가 아닌 숨은 조력자가 되는 모습을 카메라는 담담하게 따라간다.
비즐러는 게오르크에게 이입되고, 관객은 비즐러에게 이입되는 묘한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행여나 게오르크가 슈타지에 체포되는 게 아닐까, 게오르크를 돕는 비즐러가 꼬리가 잡히는 게 아닐까 2시간 내내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전전긍긍하면서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상영시간 내내 긴장상태로 보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즐러와 게오르크는 스쳐 지나갔을 뿐 제대로 만난 적이 없지만 엄혹한 시대를 살면서 서로가 서로를 지켜준 관계였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눈물을 주르륵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관이 너무 춥게 느껴질 만큼 동서 갈등의 시대상을 무섭도록 차갑게 그려낸 영화지만 결국엔 가슴에온기로 가득 차서 영화관을 나섰던 기억이 있다. 오직 이념과 체제 유지에 사활을 걸었던 시대에 인간성과 자유의지의 회복을 따뜻하게 묘사한 <타인의 삶>을 이끌고 간 배우 울리히 뮈에의 명연기는 이 영화를 여러 번 다시 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강렬하고 센 캐릭터는 아니지만 냉혹한 슈타지에서 감성적인 조력자로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한 울리히 뮈에를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 보고 싶었지만 <타인의 삶>으로 크게 조명받은 직후인 2007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게오르크가 연주하는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를 들으면서 ‘타인의 삶’에 흠뻑 동화되는 비즐러의 가슴 뭉클한 표정은 다시 봐도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