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알고 나를 안다는 것

<쇼생크 탈출> 노튼 교도소장이 놓친 게 있다면...

by Rosary

TV 리모컨으로 영화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이 영화들이 하면 어느 부분부터 시작하는지 막론하고 무조건 보게 되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쇼생크 탈출. 1994>, <더 록. 1996>, <굿 윌 헌팅. 1997>… 90년대에 개봉한 탓에 추억이 새록새록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영화의 만듦새가 너무 훌륭해서 여러 번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재미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렇게 다시 본 영화가 <쇼생크 탈출>이다.


이 영화에는 지상 최대의 악당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앤디와 레드가 수감된 교도소의 노튼 소장이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악당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노튼 소장은 악행의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아내와 그 정부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앤디가 은행 부지점장이었던 경력을 십분 활용해 자신의 검은돈을 세탁한 것까지는 얄밉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했지만 앤디의 무죄를 입증해 줄 만한 감방 동료 토미를 제거하는 순간 관객들은 누구라도 피가 거꾸로 솟구쳤을 것이다.


노튼 소장의 가장 악랄한 점은 누군가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것이다. 그저 자신의 돈세탁 하수인을 옆에 두려는 이유로 무고하게 19년을 교도소에 갇혀있었던 억울하고 참담한 앤디의 한줄기 희망을 꺾어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노튼 소장은 앤디의 결백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앤디의 결백은 말 잘 듣는 시종이 사라지는 걸 의미했으므로 그걸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방해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치워버린다. 그러나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전형과도 같은 인물 노튼 소장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 버렸다. 앤디를 띄엄띄엄하게 보고 그가 얼마나 똑똑하고 치밀한 사람인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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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무인들의 사고는 일방통행이 기본값으로 세상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자신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한 행동이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오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너 따위가 감히…” 혹은 "내가 난데..."라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에 상대방은 무조건 자신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사회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쇼생크 탈출>의 노튼 소장은 자신에게 예리한 칼날을 겨누고 있었던 앤디를 과소평가하고 짓밟은 대가를 처절하게 치른다. 자의식 과잉으로 타인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겁먹으면 털을 부풀리거나, 꼬리를 세우는 짐승들처럼 자격지심이 과하면 스스로 존재를 과도하게 치켜세우는 게 아닐까?


‘知彼知己 百戰不殆(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은 흔하지만 괜한 말이 아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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