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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Aug 31. 2023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떤 어머니

자식의 죽음이 남긴 돈이 그리 욕심이 날까요? 

살면서 만나본 최악의 인간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운 좋게도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좋지 않은 기억에 남은 사람들을 빠르게 돌아보니 그저 분수에 맞지 않은 욕심을 부리거나, 자기만 옳다는 생각에 빠져있는 독선으로 꽉 차 있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 늘 허우적대는 그런 정도였던 것 같다. 꼼꼼히 돌이켜보니 그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대체로 사람됨이 양호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상종하지 못할 최악의 인간은 염치(廉恥)를 모르는 인간이다. 염치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사람이 동물과 구분되는 것이 바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아닐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이라면 동물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다. 흔히 ‘금수(禽獸) 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작년 4월 한 방송을 통해 알게 된 기막힌 사연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재판의 진행상황이 계속 알려졌다. 2021년 1월 23일 거제도 앞바다에서 어선이 침몰하여 선원으로 일하던 김종안 씨가 실종되었다. 그런데 사고 13일째 실종자 가족센터에 54년 전 김종안 씨 삼 남매를 두고 떠난 생모 80대 A 씨가 재혼한 가족들을 대동하고 나타나서 사망보험금 2억 3천여만 원과 선박회사의 합의금 5천만 원 등 3억 원의 보상금에 대한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아들의 사망보험금을 받기 위해 A 씨는 김종안 씨의 누나 김종선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2월 1심에서 승소하였다. 이에 김종선 씨가 항소를 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화해권고 결정을 통해 수협이 공탁한 사망 보험금 2억 3780여만 원 중 1억 원(42%)을 김 씨에게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A 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부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오늘 김 씨의 항소를 기각하는 결정이 이루어져 아들 사망보험금의 상속권을 인정받게 됐다. 


54년 동안 어머니와 아무런 연락 없이 할머니, 고모 등과 함께 살았던 김종안 씨 가족에게는 상속권이 없고, 김종안 씨가 두 살도 되기 전에 떠나버린 생모 A 씨가 상속권을 가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아들이 죽고 나서야 호적에 남매를 올린 후 김종안씨의 적금과 아파트 소유권도 가져간 걸로 알려졌다.


2019년 11월 가수 구하라가 세상을 떠난 후 20여 년 만에 유산을 상속받겠다고 친모가 나타나 법적공방 끝에 결국 40%의 재산을 상속받은 일로 인해  부양의무를 게을리한 직계존속에게 상속자격을 제한하는 ‘구하라 법’이 추진되었지만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구하라로 인해 이러한 사례에 대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이런 파렴치한 부모의 행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5월, 훈련 도중 교통사고로 숨진 상주시청 사이클팀 정수정 선수(당시 19세)의 보험금과 위로금의 절반을 10여 년 전 이혼해서 연락이 끊긴 생모가 찾아가는 일이 발생했다. 알고 보니 천안함 피격 사건(2010),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2014), 세월호 침몰 사건(2014) 등에도 오래전 자식을 버리고 떠난 부모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사망보험금의 상속을 요구하는 일이 계속해서 있어왔던 것이다. 심지어 2000년 이혼하여 세월호 참사 당시 아들이 사망한 사실조차 모르던 생모 B 씨는 2021년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4억 원의 배상 결정을 받은 일까지 있다.


자녀 양육에 손톱만큼의 지분도 없는 부모가 단지 혈연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자식의 죽음으로 발생한 유산을 냉큼 챙기는 이런 무도한 일이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새끼의 죽음은 슬퍼하는 게 짐승이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의 염치없는 행태를 여야 정쟁에 밀려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니 누구를 위한 정치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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