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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Sep 07. 2023

야구는 혼자 뛰는 스포츠가 아니다.

시즌을 결정할지도 모를 패배의 무게감을 알았으면…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건 순간의 짧은 임팩트보다 켜켜이 쌓아 올린 ‘누적’이 가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한 시즌 안에서도 한 달 정도 미친 활약을 선보이는 선수는 적지 않지만,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는 선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20여 년을 1군 주전으로 정상급 활약을 하고 은퇴를 하게 된다면 존경받아 마땅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뛰어난 신인들이 합류하고 있음에도 그 긴 세월 동안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관리는 기본이고, 기술적인 연구를 꾸준히 했고, 성실히 노력했고, 팀워크도 훌륭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MLB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LA 다저스의 왼손 투수 샌디 쿠팩스(1935~. 1955~1966 LA 다저스)는 1963년 사이영상을 수상한 후 자신의 짧은 선수생활을 예견이나 한 듯 누적의 가치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역대 최우수 투수로 꼽히려면 몇 년 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나는 장기간에 걸쳐 내가 이룩할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알고 싶다. 10년이나 15년 동안 상승(常勝_늘 이기는) 투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에는 워렌 스판이나 화이티 포드와 같은 위대한 투수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보류해 줬으면 좋겠다. 스판은 20년이나 그렇게 활약했다. 위대한 선수로 받들어지려면 겨우 몇 년만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야구 생애를 통틀어 꾸준히 정상을 달려야 한다.”


1955년 다저스에 입단한 그는 1960년 8승 13패의 변변치 않은 성적을 거둔 후 야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해볼까 타진 중이었다. 5년 만에 야구를 그만둔다는 것이 아쉬웠던 그는 딱 1년만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스프링 캠프부터 자신의 투구에 대한 문제점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다저스 스카우트였던 케니 마이어스는 쿠팩스의 와인드업 자세의 어색한 동작을 지적했고, 포수 놈 세리는 샌디 쿠팩스의 편안한 피칭을 이끌었다. 코칭 스탭과 팀 동료의 조언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서 샌디 쿠팩스의 야구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1961년 18승 13패, 탈삼진 269개를 잡아내면서 리그 1위를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1903년 크리스티 매튜슨의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인 267개를 58년 만에 경신한 대기록이다. 1963년은 영광의 한 해였다. 시즌 25승 5패, 평균자책점 1.88, 탈삼진 306개를 기록하였고, 11개의 완봉승을 거두었다. 역대 최초 만장일치로 사이영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고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1차전(5:2 승)과 4차전(2:1 승) 선발로 시리즈를 4승 무패로 마감하는데 기여한 것을 인정받아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1964년 4월, 팔에 이상을 느낀 그는 선발 등판을 몇 차례 거르긴 했지만 8월 19승 5패를 기록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팔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외상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6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던 샌디 쿠팩스는 더 이상 공을 던질 수 없음을 깨닫고 그해 시즌을 마친 후 겨우 30세의 나이로 은퇴를 발표했다.


샌디 쿠팩스는 미국 프로야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지만 10여 년의 짧은 선수생활에 그쳐 그가 말한대로 역대 최우수 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만약 5년 만에 야구를 그만두고 사업가로 변신했다면 위대한 투수의 엄청난 활약을 놓쳤을 것이다. 평범한 투수로 사라질 뻔한 샌디 쿠팩스를 전설의 투수로 변화시킨 것은 선수 자신의 마음가짐과 노력이 컸겠지만 그를 관찰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당시 코칭스탭과 동료들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야구는 팀 스포츠다. 자신의 아집만 내세워서는 팀 승리를 이끌어낼 수도, 선수 개인의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도 없다. 함께 하는 동료와 팀 전체가 한마음으로 뛰어야만 값진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몇 년 반짝 좋은 활약을 했다고 오만해지는 순간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 프로야구 선수다.


*참고. 야구란 무엇인가_레너드 코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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