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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Sep 11. 2023

혐오와 경계의 시작_9.11 테러

미움의 시선을 거두고 공공의 적과 맞서 싸워야...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사무실로 출근하는 친구 A가 있었는데 다른 친구 B가 2001년 9월, 뉴욕 여행을 갔다. B는 뉴욕까지 갔는데 놀러 가자고 했고, A는 다음 날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B가 집요하게 조르자 A는 B를 만나서 밤새도록 신나게 달렸고,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둘은 숙취와 꿀잠에 빠져있었다. 그 사이 A와 B의 핸드폰은 난리가 났고, 한참 뒤에 전화를 받자마자 TV를 켰더니 충격적인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2001년 9월 11일 실제 친구들에게 있었던 일이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테러가 벌어졌을 때 한국은 저녁 시간이었고, 나는 조금 늦게 퇴근해서 샤워를 하고 TV 리모컨을 누르는 순간 현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장면이 나와서, 영화채널인가 채널을 다시 확인했던 기억이 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본 후에야 상황파악을 할 수 있었고, 전쟁 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9월 11일의 A와 B 사이에 있었던 거짓말 같은 실화는 몇 개월 뒤 들었지만 바로 전날 들은 것처럼 생생했고, 그저 술을 퍼마시자고 했을 뿐인 B는 A의 생명의 은인이 되어 오랜 우정을 쌓았다는 후일담이 남았다. 해마다 9월 11일이 되면 지금은 연락이 끊겨버린 그 친구들이 생각난다. 


2017년 9월, 카자흐스탄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9월 10일 일정을 마치고 11일 귀국하는 일정이었는데 그전까지는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하다가 숙소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이 11일에 비행기 타는 게 찜찜하다고 일정을 미루니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보고, 그제야 아, 오늘이 9.11 테러가 있었던 날이었구나 깨달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20여 년이 훌쩍 지나버렸음에도 여전히 9월 11일은 일반 승객들은 비행기 탑승을 꺼리고, 항공업계를 긴장시키는 날이라고 하니 그 충격과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된다. 9.11은 미국 사회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변화를 야기했다. 세계의 변방처럼 여겨져 크게 관심받지 못했던 무슬림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이 생기기 시작했고, 낙관주의는 사라졌다. 특정문화에 대한 혐오가 싹트기 시작한 게 아마 9.11 때부터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모습이라 몹시 우려스럽다. 무슨 일만 터지면 지역을 비하하고, 성별을 비하하고, 세대를 비하하고, 직업을 비하한다. 미치광이 보존법칙에 따라서 벌어진 일일 뿐인데도 틈만 나면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기 바쁘다. 이래서야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겠는가.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은 서로를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공격하고, 좀먹는 공공의 적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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