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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Sep 22. 2023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읽기

호기심을 해소하면 독서가 흥미진진해진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2월 28일 자 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대문 옆에 크로커스 꽃 한 무더기가 핀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책을 읽었다면 크로커스 꽃이 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기분이 좋아졌을까 엄청 궁금했을 것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두꺼운 백과사전을 찾아가며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백과사전에 크로커스 꽃에 대한 설명이 나올지도 의문이지만.) 지금은 크로커스 꽃을 검색하기만 하면 몇 초 내로 어떤 꽃인지 볼 수 있고, 과연 기분이 좋아졌을만한 화사한 꽃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인터넷 시대에 책 읽기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엉클 톰스 캐빈. 1852』이라는 다정한 제목과 달리 무거운 내용의 이 소설에는 또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오필리어는 며칠 만에 집안의 모든 부분을 철저히 개혁해서 체계를 잡았다. 하지만 집안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하인들의 협조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녀의 고생은 사실 시지프스 또는 *다나이데스의 고생과 같은 것이었다. 


다나이데스는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설명과 함께 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그림도 볼 수 있다.

*리비아 전설 속의 왕 다나오스의 50명의 딸들. 그녀들은 다나오스 왕의 쌍둥이 형에게서 난 50명의 아들들과 강제로 결혼하게 되는데,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딸들은 모두 첫날밤에 배우자를 살해한다. 그 대가로 그녀들은 중죄인을 던져 넣던 황천 중 하나인 타르타르에서 바닥이 없는 통에 끝없이 물을 길어다 붓는 형벌을 받는다.

다나이데스._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906

인터넷 시대의 독서는 궁금증이 동하면 관련 내용을 얼마든지 찾아보면서 호기심을 풀 수 있다. 이런 책 읽기에 최적화된 작가 중 한 명은 무라카미 하루키 같다. 그의 소설에는 수많은 고전 영화와, 올드 팝이 등장하는데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궁금하기 짝이 없었던 콘텐츠를 지금은 찾아보면서 하루키의 감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5』에는 고전 영화 <키 라르고. 1948>, <말 없는 사내. 1952>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조니 마티스의 노래 ‘Teach me tonight. 1968”, 스테픈 울프의 “Born to be wild. 1969”, 마빈 게이의 ‘I hear it through the grapevine. 1970” 같은 구닥다리 노래들이 등장하는데 인터넷이 없는 시대에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다면 대체 무슨 영화고 무슨 노래인지 궁금해서 속이 터졌을 것이다. 

Love Me Tonight - YouTube

Steppenwolf - Born To Be Wild (Easy Rider) (1969) - YouTube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 YouTube


그때그때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요즘 책 읽기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또 이렇게 읽다 보면 현재 읽는 책 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메트로 랜드. 1963』에서 소개된 『알렉산드리아 4중주』에 끌려 4권을 전부 읽게 되었는데 상당히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만약 『메트로 랜드』를 읽지 않았다면 로렌스 더럴이라는 작가를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책을 찾아 읽다 보면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도 덜 수 있어 이득일 때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주제나 스타일을 관통할 수 있어 좀 더 흥미진진하게 책 읽기에 빠져들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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