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감동은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9월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개최된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이 10회였는데 벌써 19회 아시안 게임이라니…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예행연습과도 같아서 상당히 공들여 준비했던 대회였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크게 작용한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93개, 은메달 55개, 동메달 76개로 중국에 금메달 단 1개 뒤진 종합 2위를 차지하였다. 개인종목, 구기종목까지 거의 전 종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는데 그중에서도 여자 육상 800m, 1500m, 3000m 장거리 3관왕을 차지한 임춘애 선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1969년생인 임춘애 선수가 아시안 게임에 참가한 나이는 고작 17살이었다. 모든 국제대회가 그렇듯이 주목받던 선수들은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치는 반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린 선수가 깜짝 활약을 펼치는 일이 많았다. 임춘애 선수도 바로 그런 선수였다. 심지어 임춘애 선수는 대표 선발전에서도 탈락했었다.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했던 그녀가 이후 3000m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자, 육상계에서 부랴부랴 추가로 선발한 것이다.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10대 임춘애 선수는 실력에 행운까지 따르면서 육상 3관왕에 오르는데 800m 경기에서 2위로 들어왔지만 1위로 들어온 인도 선수가 실격당하는 바람에 3000m, 1500m에 이어 3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육상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당시 우리나라에서 바람 불면 날아갈 것처럼 가냘픈 어린 소녀가 육상 3관왕에 올랐으니 그 관심과 인기는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 게임이 끝난 후 인터뷰와 방송 출연이 이어지면서 그 유명한 ‘라면 루머’가 사실처럼 굳어지기도 했다.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 우유 마시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임춘애 선수의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임춘애 선수가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말을 한 적도 없고, 유당불내증으로 우유를 먹으면 탈이 나서 아예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의 ‘라면 무용담’의 진실은 임춘애 학교 코치가 당시 육상부의 열악한 환경을 전하면서 학생들이 간식으로 라면만 먹는다고 한 것이었는데 기자가 각색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임춘애 선수의 다소 가녀린 외모 때문에 라면 이야기는 점점 부풀려져서 나중에는 영양실조라는 황당한 루머까지 나왔는데 나중에 그녀는 운동선수들은 무조건 잘 먹어야 운동을 할 수 있다, 그 시절 체력 보강을 위해 도가니탕도 먹고, 삼계탕도 먹었다고 밝혔지만 40여 년 동안 라면 소녀 이미지는 벗어나기 힘들었다.
스포츠를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기사가 아닌 각본을 쓰는 스포츠 기자들이 적지 않다. 요즘엔 조회수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허무맹랑한 기사들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스포츠의 감동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취재하고 전달하는 것이 스포츠 기자들의 본분이다. 어설픈 감정에 호소하거나 섣부른 추측으로 스포츠의 본질에서 벗어난 기사를 만들어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