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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Sep 27. 2023

예쁜 월병, 그렇지 않은 속사정

먹기 아까울 정도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이야기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는 동안 세월 모르고 지내다가 해마다 8월이 되면 시작되는 고급호텔의 월병(月餠) 판촉전은 추석이 돌아왔음을 일깨워주었다. 월병의 모양과 색깔이 예쁘기도 하지만 포장도 화려해진 월병을 보는 것만으로도 명절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스타벅스 같은 세계적인 커피 매장에서조차 월병 판매에 열을 올리는 걸 보면 싱가포르는 월병에 진심인 나라가 아닐까 싶다. 


사실,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중추절(추석)은 절기에 불과하고 한국처럼 명절로 지내지도 않으니 당연히 휴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추절에 월병을 나눠먹는 전통은 여전하며, 해마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초호화 월병의 가격에 대한 뉴스는 연례행사처럼 전해지곤 한다. 그렇다면 중추절에 월병을 먹는 전통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중국 남송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의 월병 형태를 갖추고 중추절에 먹는 풍습은 14세기부터라고 한다. 원나라의 폭정이 극에 달하자 주원장은 이들을 몰아내고 한족들의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8월 15일을 D-Day로 삼았다. 이때, 월병 속에 비밀작전을 담은 쪽지를 넣어 선물을 하듯 월병을 전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이것이 월병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스타벅스 싱가포르의 2023 월병 선물세트

월병 반죽은 밀가루, 설탕, 라드, 물엿, 달걀 등을 섞어 만드는데 이 반죽만으로도 상당한 고칼로리인데 여기에 팥, 말린 과일 등을 다져서 섞은 소가 들어가고 ‘월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름달 같은 모양의 달걀노른자를 가운데에 넣어 모양을 만들고 표면에는 윤기가 나도록 난황, 설탕, 캐러멜 등으로 시럽을 발라 오븐에서 굽는다. 말 그대로 기름과 당 덩어리인 것이다.


만들어지는 과정만 봐도 현대인들이 환영할 만한 선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본고장 중국에서조차 월병 선물 받을 때 표정관리가 필요할 정도로 꺼려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중추절의 월병 선물은 자신이 먹지 않고, 그대로 다른 사람에서 선물하는 방식으로 “월병의 대순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지 오래다. 중추절이 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처분해야 하는데 중추절이 지나면 선물로 줄 수 없어 결국 자신이 울며 겨자 먹기로 소비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중국에서 월병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이유는 월병의 인기가 떨어지다 보니 호화로운 포장지 안에 마오타이주나 우량예 같은 값비싼 술을 함께 넣거나, 금으로 된 나이프와 포크를 넣은 월병 세트의 가격을 대폭 올리고 있는 상술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 간부나 직장상사에게 뇌물을 줄 때 월병상자 속에 숨겨서 넌지시 전한다는 소문도 떠돌기도 한다. 


고마운 이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정성껏 빚었던 월병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과소비와 부정부패의 상징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 안타깝다. 우리나라 역시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뇌물이 오가는 사례가 근절되지 않는 걸 보면 “월병의 타락”이 비단 남의 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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