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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Oct 03. 2023

한 발 앞으로 다가선 29년 만의 꿈

소중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고, 쉽게 얻어지지 않아서 더 소중하다.

MLB의 명문구단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는 열광적인 팬과 오랫동안 우승 못한 걸로 유명한 팀이었다. 1901년 창단한 보스턴 레드삭스는 1916년 우승을 못하다가 2004년 그 유명한 밤비노의 저주(1920년 베이브 루스를 지역 라이벌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시킨 후 우승을 못함. 밤비노는 베이브 루스의 애칭)를 끊어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88년 만의 우승도 기가 찰 노릇인데 보스턴 레드삭스보다 한술 더 뜨는 팀이 있다. 


1870년 창단한 시카고 컵스는 1907년, 1908년 우승한 이래 무려 108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월드시리즈는커녕 내셔널 리그 마지막 우승이 1945년일 정도로 지독한 부진과 불운에 시달렸다. 레드삭스에 밤비노의 저주가 있다면 컵스에는 염소의 저주(1945년 월드시리즈 4차전 염소를 데리고 컵스의 리글리 필드에 입장하려다가 거절당하자 다시는 컵스가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폭언을 퍼부은 일)가 있었다. 

1908년 시카고 컵스 월드 시리즈 우승 기념_Chicago History Museum : 다음 우승이 108년 후라는 걸 짐작이나 했을까

레드삭스나 컵스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긴 해도 10개 팀 밖에 없는 KBO 리그에서 1994년이 마지막 우승인 LG 트윈스 역시 우승에 대한 팬들의 염원이 대단한 팀이다. 오늘 LG 트윈스는 경기가 없었지만 2위 팀 KT위즈와 3위 팀 NC 다이노스가 모두 패하면서 우승을 위한 매직 넘버를 모두 지우며 2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 당시 MBC 청룡 시절부터 1990년 LG 트윈스가 인수하면서 지금까지 트윈스팬이지만 우승이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대학시절 잠실로 직관을 다닐 때 지는 경기를 거의 보지 못할 만큼 LG 트윈스는 강팀이었고, 창단 첫해인 1990년 우승 이후, 1994년에도 수월하게 우승했고 90년대까지만 해도 가을야구 한자리는 늘 차지할 만큼 좋은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영광의 시절을 뒤로하고 LG 트윈스는 2000년대 들어 6668587667이라는 비밀번호 열 자리를 꽉 채우며 2003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하위권에서 허우적대는 팀이었다. 꿈도 희망도 없던 암흑기 10년 동안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생업에 열중하느라 야구를 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시절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시절이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2013년 말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후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보기 시작했으니 내가 본 10년 동안은 우승은 못했어도 가을야구는 곧잘 가는 팀이었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모자, 싸인볼_서귀포 야구 명예의 전당

말이 29년이지 1995년생 엘지팬부터는 우승을 본 적도 없는데 30대 진입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될 만큼 오랜 시간이다. LG 트윈스 한 팀에서 19년을 뛰었던 박용택은 우승 반지 없이 은퇴했다. 우승을 바라던 올드팬들 중에서 세상을 떠난 분들(매일 트윈스 야구를 보시던 우리 부모님들조차 결국 우승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은 또 얼마나 많을까. 야구를 사랑하던 LG 그룹 구본무 회장 역시 끝내 트윈스가 다시 우승하는 걸 보지 못하고 2018년 작고하셨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어도, 2023년 KBO 리그 최종 우승을 하려면 한국시리즈라는 관문이 남아있다. 지금의 전력과 선수층으로 보면 몇 년간은 우승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강팀으로 보이지만 故 하일성 위원이 남긴 “야구 몰라요”라는 말씀처럼 어떤 변수가 나타나서 성적이 요동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올해 우승을 하고 다시 29년 동안 우승을 못한다면 내가 보는 마지막 우승이 올해가 될 수도 있다. 


소중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고, 쉽게 얻어지지 않아서 더 소중하다. 2023년 프로야구 챔피언을 향한 힘찬 한 발을 내디딘 LG 트윈스가 올시즌 반드시 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일궈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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