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는 모르겠고, AS 걱정이 한가득…
어제저녁 위니아가 36억 원 규모의 자사 발행 만기어음 부도 발생으로 인한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1990년 한라그룹 계열사 만도기계가 가정용 에어컨 ‘위니아’를 처음으로 출시하였고, 1995년 ‘딤채’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김치냉장고가 크게 인기를 끌자, 대형 가전업체에서도 앞다투어 출시하여 지금은 없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주방가전의 필수품이 되었다.
중소업체였지만 가정용 에어컨과 김치 냉장고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며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한라그룹이 어려워지면서 사업부가 해체, 매각을 거쳐 2014년 대유그룹에 인수되어 ‘대유 위니아’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사실 대우전자 해체 과정에서 일부 라인을 인수하면서 대우 위니아가 된 줄 알았던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어제 부도 소식을 접하고서야 ‘아, 대우가 아니라 대유였어?’라는 반응이 상당수였다.
그러나 부도 소식을 알게 되고 AS 걱정 글이 쏟아지는 것만 봐도 일반 소비자에게 대우든, 대유든 사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내가 가진 제품들 AS는 어떻게 되는가일 것이다. 나 역시 심심하면 한 번씩 속 썩이는 냉장고부터 떠올랐다. 하필 말썽이 나도 여름에 말썽이 나는지 지난 6월 AS 기사 방문 대기 순서를 기다리기가 답답해서 스스로 냉장고를 고쳤던 경험이 있던지라 ‘그래, 뭐 또 말썽이면 내가 고치면 되지.’ 싶은 속 편한 생각도 한순간이었다.
지금 사용하는 노트북 역시 가끔 버벅거려서 점검이 필요한데도 노트북을 택배로 보내고 서비스가 끝나면 다시 택배로 보내주는 방식이라 불안 불안한 채로 그냥 쓰고 있는 상황인데 냉장고까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몰려왔다. 중소업체 제품이 저렴한 가격에 비해 좋은 스펙을 가졌다고 해도 AS 때문에 가전제품은 역시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는 풍토가 이해되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광고사에 길이 남는 명카피를 실감하는 순간이랄까. 1980년 금성 하이테크 칼라 TV 광고에 등장한 이 문구는 구구절절 제품의 우수성을 나열하기보다 당시로서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TV를 구매할 때 신중하라는 말 한마디였지만, 그러니까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사야 한다는 결과를 도출하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생의 격언으로 남게 되었다.
가전제품을 10년 이상 사용하는 소비자가 사라진 요즘 세상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문구지만 당시에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카피는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되는 명언이었다. “순간의 선택”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 투성이인 인생 전체를 봐도 문득문득 떠올릴 만한 상황이 얼마나 많은지…
위니아 부도 소식을 듣고 “순간의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인생까지 떠올리게 되었으니 생각의 꼬리가 길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