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면 별뜻 없는 말을 내뱉지 말아야…
브런치를 보면 시어머니와 크고 작은 갈등에 대한 글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홀가분하게 살고 있는 나와는 무관한 글이지만 간혹 제목에 낚여서 몇 편 글을 읽어보면 80년대나 90년대 이야기가 아닌가 의심스러운 내용도 종종 본다. 요즘엔 고부갈등에 더해 장서갈등까지 만만치 않은 세태라는 걸 주워듣고 있지만 역시 생판 남이었던 사람들이 가족으로 묶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오늘 브런치 글을 읽다가 문득 엄마의 시어머니,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수더분하고 정이 넘쳐나는 그 시대의 일반적인 할머니들과는 많이 다른 분이었다. 기본적으로 말수가 적고, 다소 차가운 성격이었지만 조용하고 누구보다 배려심이 많으셨다. 할머니는 손주들 손은 맞잡아주셨지만 손주들 뺨 비비면서 “아이고 내 새끼, 내 강아지.” 뭐 이런 애정표현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명절이나 차례 음식 준비하고 채반에 남겨둔 동그랑땡, 약과나 곶감 하나를 집어서 손주 손에 쥐어주며 “아 나, 너 해라.” 하신 게 당신 최고의 애정 표현이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수줍은 애정표현이 두고두고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았고, “아 나, 너 해라.” 하는 할머니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엄마는 3살 무렵 어머니를 잃고, 한국전쟁 때 이모 가족과 함께 월남해서 알게 모르게 눈칫밥을 먹고 자랐는데 할머니는 그걸 늘 짠해하셨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에게 “너희 집에서는…”으로 시작하는 공격을 단 한 번도 안 하셨고 언제나 할머니 말씀에 엄마가 마음 다칠까 늘 말조심을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딸과 며느리는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일찌감치 인정하셨고(사실 할머니는 고모들에게도 말조심을 하셨지만) 며느리들과 이렇다 할 갈등이 없었다. 할머니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무엇이 아들을 위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현명한 분이었다.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사셨지만 우리 집에 일 년에 한두 번 오실까 말까였고 명절에 찾아뵙고 가끔 손주들이 놀러 가면 부모님이 데리러 와서 저녁 먹고 오는 게 전부였다. 어머니는 늘 할머니가 참 고마운 분이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런 할머니 아래서 자랐기에 아버지는 악의가 없는 사람이고 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버지 역시 엄마와 다소 격한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에도 “너희 집에서는…” 블라블라 같은 말을 평생 절대 하지 않았다.
엄마는 고아나 다름없이 자란 것에 대해 마음속 한 구석에 상처가 있었는데 결혼하고 아버지와 시댁식구에게서 단 한 번도 그걸 끄집어내서 가슴에 응어리가 생긴 적이 없음을 두고두고 고마워했다. 누군가를 나무랄 때 잘못한 것만 지적해야 하지, 상대방의 과거나 약점을 잡아서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깨우쳤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결함이 있다. 특히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고향이나 가족에 대한 것들을 주제로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몰상식하고 저급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세상에 아직도 그런 시어머니들이 브런치에 종종 등장할 때마다 믿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건 단지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됨됨이의 문제라는 걸 깨닫는다.
부모 자식 형제 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고, 그 선을 지켜야 오해와 갈등이 없다. 내 자식과 같이 사는 남의 자식은 어려워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어놓고 그 말로 분란이 되면 ‘별 뜻 없이 한 말’이라는 무적의 방패는 내세우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별 뜻 없는 말을 생각 없이 자꾸 내뱉는다면 그의 나이가 환갑이든 칠순이든 어른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