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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Oct 20. 2023

빈대 수입을 거부합니다

사람과 쥐의 공생? 빈대, 바퀴벌레도 끼어줘야 할까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빈대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2030들은 물론이고 4050 세대도 빈대는 속담에서나 들어봤지, 실체는 모를 텐데 느닷없이 내년 올림픽 개최지 프랑스 파리에서 빈대가 창궐해서 비상이라는 소식을 접하니 문화와 예술의 도시에서 빈대가 웬 말인가 싶다.


하지만 tolerance 관용의 나라답게(?) 이미 오래전부터 파리는 쥐가 많은 것으로 유명했고, 쥐떼가 많은 곳을 표시한 지도까지 제공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파리시는 올해 6월 쥐를 퇴치하는 걸 포기하고 사람과 쥐의 공생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파리에 사는 쥐는 흑사병을 옮기는 종이 아닌 세균성 질병인 렙토스피라증과 같은 질병을 옮기는 다른 종의 쥐”라면서 "쥐에 대한 편견을 바꾸어 시민들이 쥐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려 파리 공중위생 담당 부시장의 발언이다.


동물단체 PAZ는 사람과 쥐의 평화로운 공동서식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는데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다. 쥐가 많다는 건 환경이 비위생적이라는 의미고, 벼룩, 빈대, 바퀴벌레 등 해충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을 텐데 도시의 위생을 책임지는 공직자가 지나치게 안일한 대처를 한 게 아닐까 싶다.


오래전 유럽여행에서 나 역시 빈대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 그것도 청정한 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스위스에서… 한 여행 커뮤니티에서 알프스에 가면 등산열차로 왕복하지 말고 내려올 때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면 알프스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글을 보고 이거야말로 해볼 만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라우터브루넨 숙소에 문의했더니 눈썰매와 방수패딩을 대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사용 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축축해진 패딩은 빈대가 서식하기 최적의 환경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알프스 눈썰매는 정말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신나는 추억이 되었지만 다음 여행지인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에 발진이 생기고 부어오르는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인도 모르고 피부병이라고 생각해서 여행을 포기하고 귀국을 고려할 만큼 심각했지만 빈대 때문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가 빈대 때문이라면서 깨끗이 씻고, 가지고 있는 옷은 모두 세탁해서 햇볕에 바짝 말리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피렌체에서 관광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호텔 화장실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반나절 동안 손빨래를 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옷을 널어 마르기만 기다리면서 하루를 공쳤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그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하루 이틀 지나니 발진도 가라앉고 컨디션도 돌아와서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그 여행자를 만나서 해결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벼르고 별러서 떠난 여행이 반토막이 되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여행의 귀인이었던 것 같다.  


이후 빈대 해프닝은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싱가포르에 살 때 다시 빈대가 일상에 등장했다. 이번엔 내가 직접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온 인턴직원이 피부병으로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병원도 꽤 다녀봤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자 유럽에서 겪었던 일이 퍼뜩 생각이 나서 숙소가 어떤지 물었더니 노동자들 숙소에서 지낸다길래 숙소부터 옮기라고 했지만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라 곤란하다는 것이다.


며칠 지나서 이제 괜찮다길래 숙소를 옮겼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닌데 자기만 벌레에 물리길래 룸메이트들이 침대 주위에 물컵을 놓아두면 빈대가 침대에 올라오지 않는다는 비책을 전해주었고, 믿을 수 없지만 거짓말처럼 물리지 않게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숙소는 옮기는 게 좋겠다고 권해서 며칠 후 결국 나은 곳으로 옮기면서 빈대 소동은 일단락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천, 대구 등에서 빈대에 물린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니 코로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고 활발한 요즘, 이미 국내에 상륙한 것 같아 걱정스럽고 괜시리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사람과 쥐의 평화로운 공생 선언으로 빈대까지 동반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공생에 빈대까지 더하면 이제 바퀴벌레도 끼어주어야 하는 건지… 파리는 세계에 빈대를 수출한다는 불명예를 떠안지 않으려면 관용정신보다 시민의 공중위생을 우선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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