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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Oct 21. 2023

미니멀리스트에게 책장 비우기란?

백권 정도의 애장도서만 남기는 그날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장서가들의 서재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떤 인테리어보다도 멋진 책장을 보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소장하고 싶은 책들을 욕심껏 사서 책장에 그득하게 채우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30대까지는 책과 음반 욕심이 커서 빠르게 책장의 컬렉션을 늘려나가는 재미에 흠뻑 빠지고 말았지만 이사를 하면서 슬슬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사할 때마다 박스에 책과 가벼운 물건을 절반씩 배분하여 너무 무겁지 않도록 이삿짐을 꾸리고는 있지만 이삿짐센터 기사분들이 “뭐가 이렇게 무거워요?”라고 물을 때마다 어찌나 눈치가 보이는지…


이후 몇 년에 한 번씩 백권 이상 책을 처분하는 것 같은데 그만큼의 새책을 사들이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가득 찬 책장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걸 반복하는 중이다. 가진 책들을 도서관에 기증하려고 알아본 적도 있지만 출판한 지 5년 이내의 도서들만 기증받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증이라는 명목으로 수 십 년 된 책들을 도서관에 내다 버리려는 사람들이 상당수일 수 있어 이해가 되면서도 웬만한 책부자가 아니고서야 5년밖에 안된 책을 처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침대와 소파 같은 가구와 대형가전제품은 없지만 책무더기가 슬슬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면 책장부터 비워야 하는데 그게 여간 어렵지 않다. 처분하려고 보면 아까워서 다시 집어넣고, 책마다 그리 의미 부여를 하게 되는지 내 의지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데 왜 굳이 그 무거운 책들을 소유하고 싶은 걸까.


최근 몇 년 사이 공공도서관이 정말 많이 생겼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데 속속 문을 열고 있는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새로 생긴 도서관들을 구경하다 보면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실제로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관련 연구(명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김영석 교수)에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도서관 수가 무려 61.3%나 증가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도서관수는 엄청나게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도서관 수가 증가한 반면, 대출자 수는 57.5%나 감소하였고, 대출 책 수는 18.2% 증가에 그쳤다는 것이다. 도서관 수는 늘어났는데 이용자 수는 줄어들었다는 것은 반갑지 않은 사실이다. 근본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전체 이용자 수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연령대별 이용자 수를 보더라도 성인 대출자도 크게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도서관에 있는 미지의 책들을 향한 욕심으로 소장하고 있는 책도 다 읽지 못하면서 2주 대출기간 동안 4권의 책을 빌려서 일주일에 한두 권씩 꾸역꾸역 읽고 있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 나로서는 도서관 이용자가 줄어들었다는 게 실감이 되지 않는다. 신간이나 인기도서들은 대출 예약대기 순번이 한 달 이상으로 밀리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소유’ 대신 ‘공유’라는 개념이 가장 필요한 것이 책일 텐데 좋은 책만 보면 사서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욕심은 버리기가 쉽지 않다. 언젠가는 백권 정도의 책만 남기고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털어버리고 도서관만 이용하고 싶지만 언제나 그렇듯 머리가 시키는 대로 가슴이 따라주지 않으니 문제는 문제다.


*자료 참고.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이용변화 추이 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_명지대 문헌정보학과 김영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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