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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아버지의 집으로 떠나다.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by Rosary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들려왔다.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스스로 교황직에서 물러났으니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20년 만에 현직 교황의 별세를 접하게 되었다. 1989년 10월, 당시만 해도 가톨릭 신자였기에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해서 한국에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를 현장에서 본 적이 있었다. 2005년 4월 2일, 유럽배낭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교황의 투병 소식은 들었지만 3월 2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병약해 보였어도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았기에 선종 소식을 들었을 때 꽤 놀랐었다. 교황이 세상을 떠나면 로마는 폐쇄되어 여행객들도 발이 묶이기 때문에 직전에 로마를 떠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로마와 바티칸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궁금했다.

R0011473_s.JPG 바벨 대성당에 자리한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

2010년 폴란드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바벨 대성당 뒤쪽에 조촐하게 자리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을 보고 감회가 새로웠다. 1978년 10월부터 2005년 3월까지 27년(역대 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이나 세계사의 질곡을 함께 했던 큰 인물이 이렇게 소박하게 자리 잡은 기념공간을 보니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금이야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 독일 출신 베네딕토 16세가 있었기에,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가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1978년 콘클라베에서 선출될 당시 무려 455년 만에 이탈리아인이 아닌 외국인 교황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으로 알려졌지만 20세기 최연소 즉위 교황이었고, 세계 평화와 반전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이트클럽 경비원, 청소원, 화학 연구원 이력이 있을 만큼 사제가 되기 전 꽤나 스펙터클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사제 서품을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소탈함을 추구해서 화제가 되었다. 특히 교황 관저인 사도궁전이 아닌 성녀 마르타 호텔에서 거주했고, 화려한 붉은색 제의 대신 장식이 없는 검소한 제의를 입고, 추기경 시절부터 착용하던 철제 십자가를 계속 고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부모는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파시즘이 만연하면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걸로 알려졌다. 그는 젊은 시절 축구와 탱고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젊은이였지만 예수회 수련생이 되면서 가톨릭에 귀의하였고, 사제가 된 이후 슬럼가로 전락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되살리고, 엄혹한 군부독재시절을 견뎌내면서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로마교구의 산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201312.jpg 2013년 3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식

가난한 사람들의 성자로 존경받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따르기 위해 교황으로 사용할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결정했다는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잊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교회의 권력을 가난한 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하지 못한 교회의 사명을 누가 이어갈지 콘클라베 결과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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