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국(傾國)의 재봉사 로즈 베르탱

프랑스 왕실을 휘청이게 한 오뜨 꾸뛰르의 전설

by Rosary

계절마다 준비된 열두 벌의 예복, 유행하는 옷 열두 벌, 의식을 위한 복장 열두 벌이 규정되어 있었으며 매년 수백 벌의 옷이 새로 지어졌다. 궁중의 패셔니스타가 같은 옷을 입는다는 수치는 상상할 수가 없다. 옷은 그녀(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의상가 베르탱이 왕비에게 재상보다도 더 큰 힘을 행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재상은 수십 명이든 상관없이 교체할 수 있지만, 베르탱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베르탱은 최하층 계급의 평민 출신이었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최초의 디자이너이자, 최고급 기술자로서 왕비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중에서


이 책의 한 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묘사되는 로즈 베르탱(1747~1813)은 어떤 사람일까 호기심과 궁금증이 발동했다. 그녀에 대한 책이 있을까 검색해 보니 일반도서는 찾을 수 없어 실망했지만 뜻밖에 만화책을 발견했다. 오호, 간만에 만화책 정주행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설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이케다 리요코). 1972』도 안 봤는데 『경국의 재봉사 로즈 베르탱(이소미 진게츠). 2019』이라니…

1780_1.jpg 1780년대 로즈 베르탱의 드레스

웹툰조차 지루해서 안 보는데 연재도 끝나지 않은 만화책을 보게 될 줄이야 싶었지만 역시 만화책 넘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하는 디자이너의 일대기는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프랑스 작은 시골마을 재봉사였던 마리 잔 베르탱은 혈혈단신 파리로 가서 1770년 르 그랑 모골(Le Grand Mogol)이라는 부티크를 차린 후, 1772년부터 왕실 전속 디자이너로 베르사유에 입성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고객의 장단점과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파악하여 귀부인들의 구미에 맞는 옷을 척척 만들어내는 베르탱은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디자이너들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지만 파리 생토노레(Saint-Honoré)에 있는 그녀의 부티크에는 30명이 넘는 재봉사가 있을 정도로 프랑스와 유럽 전체의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의 일가를 이루며 의류 재상(Minister of Mode)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다.

1780.jpg 1780년대 로즈 베르탱의 드레스

헤어스타일을 담당했던 레오나르와 함께 베르탱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화려한 로코코 스타일로 앙투아네트를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사치와 허영의 대명사로 남아있는 앙투아네트인만큼 그녀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다는 것이 문제였다.


베르탱은 프랑스혁명 당시 “사치품을 만들어 부패를 초래한 부패 그 자체”로 시민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고, 신분제가 엄격했던 당시 미천한 출신의 그녀가 귀족은 물론 왕족조차 쥐락펴락할 정도로 최고의 권력을 구가하자 귀족들에게 “근본 없는 오만한 인간”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쯤 되면 혁명 당시 앙투아네트와 최후를 함께 했을 것 같지만 시대를 읽고 처세에 능했던 그녀는 1792년 10월, 왕비의 처형 며칠 전 영국으로 망명해서 화를 면한다. 1795년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혁명의 영향으로 화려한 로코코 스타일은 설 자리를 잃었고, 1813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haute.jpg 크리스찬 디올, 피에르 발망, 비비안 웨스트우드, 크리스찬 라크루와의 베르탱 스타일의 드레스

베르탱은 프랑스혁명 당시 왕실의 재정을 위태롭게 할 만큼 사치를 부추겨서 귀족과 혁명세력 모두에게 지탄을 받았지만 현대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의 기원이 되는 인물로 재평가되고 있다. 베르탱 스타일은 크리스찬 디올, 피에르 발망, 비비안 웨스트우드, 크리스찬 라크루와 등 무수한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회주의자의 GOAT, 조제프 푸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