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에세이, 몸으로 체험하다.
한 달 전쯤 달리기에 관한 글을 썼다. 산책을 하다가 3km쯤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나의 달리기는 3월 19일부터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 달 전과 차이가 있다면 매일 뛰는 것에서 주 3~4회 정도로 페이스를 조절한다는 것과 30분 동안 3km 달리기에서 42분 동안 5km 달리기로 속도와 거리를 늘렸다는 것이다.
마라톤에 도전한다거나 10kg 정도 체중을 감량하겠다거나 하는 목표가 없이 그냥 즐기기 위한 달리기였지만 뛰다 보니 이렇게 뛰는 게 맞나 싶은 의문이 들고, 목표는 없어도 어느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러닝 레벨(Running level)을 찾아본 것이 화근이었다(?) 1km를 10분에 달리는 (달린다고 하기도 민망한) 말 그대로 슬로조깅에 만족하던 달리기였지만(물론 횡단보도도 건너고, 쉬엄쉬엄 걷기도 하는 등) 이왕 시작한 거 동나이대 평균 정도는 해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5km 초보(달리기를 시작한 지 최소 한 달 이상) 기준 50대 남자 35분 여자 40분 이라니…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들 뛰는 게 아닌가 싶어 놀랐고,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었나 하는 자각도 들었다. 안 봤으면 모르겠지만 러닝 레벨을 보니 속도를 끌어올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횡단보도 대기시간 없이 멈추지 않고 각 잡고 5km 달리기로 코스를 정해서 뛰기 시작해서 이제는 42분대까지 진입하게 되었다.
최초로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돌이켜보니 어느새 25년 전이다. 독일의 외무부 장관 요쉬카 피셔의 에세이 『나는 달린다』 를 사서 읽은 게 2000년이다. 50대를 눈앞에 두고 1년 만에 112kg 뚱보에서 75kg 몸짱으로 거듭난 중년 남자의 자기 개조 경험담은 독일을 넘어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이끌어내며 달리기에 대한 관심과 열풍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많이 날씬해서(?) 체중감량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고, 2030 젊은 직장인이라 아침에 달리기를 한다는 건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25년이 지나서 어느새 요쉬카 피셔만큼 나이를 먹고, 과체중이 되어보니 그의 달리기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되었다.
25년이나 된 에세이라 절판된 지 오래지만 책장 한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나는 달린다』를 비장한 마음으로 꺼내 들었다. 활자로 읽었던 달리기를 몸으로 경험하니 책이 다시 읽힌다. 나의 달리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내키고 몸이 허락하는 한 새벽을 달리는 일상의 즐거움을 오래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