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부자의 새로운 취미. 재봉수업
“선택과 집중”, 얼마나 멋진 말인가. “선택과 집중”만 잘한다면 훨씬 편한 인생을 살 수 있을 텐데… 내가 제일 못하는 게 바로 이 “선택과 집중”이다. 외로움 유전자가 없는 대신 산만함 유전자가 가득하다는 게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언제나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걸 즐겨하는 편이라 학창 시절 공부할 때도 한 과목을 진득하게 못하고, 이거 하다가 저거 하고, 아예 공부를 접고 책을 읽을 때도 있었다.
취미생활은 이보다 더 정신없다. 두 달 전에 시작한 달리기, 매일 저녁 6시 30분마다 꼭 챙겨보는 프로야구, 그림 그리기, 외국어 공부 등등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지경이다. 다른 것들이야 그냥 하면 되는 거지만 꼭 배워서 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옷장 한 구석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재봉틀이 그것이다. 할 줄도 모르면서 수년 전에 홈쇼핑에서 충동구매한 재봉틀(확인해 보니 생산일자가 2016년 6월)을 볼 때마다 언젠가 저걸 꺼내서 작동해봐야 할 텐데 녹스는 건 아닌가 조바심이 생기곤 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전원을 껐다 켰다만 반복하던 재봉틀을 마침내 작동하게 되었다. 지난주부터 재봉수업을 시작한 것이다. 손재주가 좋은 동네 친구에게 그냥 해보라는 권유를 들은 후 전원을 켜서 작동을 해볼 때도 있었지만 정상적으로 구동해 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봐도 모르겠고, 기계치인 내게 재봉틀은 너무 어려운 기계였다. 그러다가 지난겨울에 가까운 교육원에 수강문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5월에 개강하는 수업 안내 문자가 왔길래 덜컥 수강 신청을 해버렸다.
몇 달씩 진행되는 수업은 부담스러워서 망설였는데 주 2회 3주 36시간 단기수업으로 진행하는 소품제작반이 있다길래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다. 6번 중 2번을 참석했는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하루에 6시간을 꼬박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게 은근히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재봉틀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는 다른 수강생들과 달리 재봉무식자인 내게 수업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첫 수업은 가지고 있는 데님 소재 옷으로 앞치마를 만드는 거였는데 직선으로 박음질도 해본 적 없는 내게는 너무 버거웠다.
요란하게 드드드득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비뚤어지는 박음질선을 보면서 한숨만 나오고,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다행히 선생님이 나의 허접한 솜씨를 금세 파악해서 좀 더 쉬운 사각형 천 5장을 이어 붙이는 에코백 만들기로 하향조정해 준 후 배움의 뜻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일부터 시작하는 백팩 만들기 위해 원단을 미리 재단하는 숙제를 하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간단히 옷 수선 정도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재봉틀 활용법만 배우려고 했던 의사와 무관하게 수업을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이왕 시작한 거 찬찬히 제대로 배우고 싶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틀림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 과정을 충실히 즐겨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