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슈퍼스타 이승엽 감독의 퇴장

“투마카세”가 두산베어스에 남긴 것

by Rosary

오랜 야구팬인 나는 1995년 4월 15일 잠실 개막 경기를 보러 갔다.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였고, 개막전이다 보니 선발 매치업은 양 팀의 에이스 이상훈과 김태한이었다. 이날 LG 트윈스는 5:1로 승리했다. 7회 초 대타로 여드름 투성이의 앳된 고졸 신인선수가 등장했고, 김용수 선수를 상대로 안타를 쳤다. 면도날 제구로 유명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 김용수 선수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경기에 나선 19살의 어린 선수가 안타를 쳐내다니… 그 선수가 슈퍼스타 이승엽이었다.

1995년 4월 15일 이승엽의 프로 데뷔 경기 잠실에서 그의 첫 안타를 봤다.
20250603_s.jpg 2017년 9월 21일 대구 경기 직관, 마지막으로 이승엽의 활약을 지켜봤다.

세월이 흘러 흘러 이승엽은 홈런 타자가 되었고, 일본 프로야구 진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2017년 은퇴할 때까지 한일 통산 626 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은퇴 후 이승엽 야구장학재단을 설립하였고, 간간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고, 해설위원으로 활동하였지만 주로 국제경기나 지상파 중계 해설을 맡았기에 지도자 현장복귀는 멀어지는 걸로 보였다. 2022년 6월부터 JTBC 최강야구의 감독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반갑게 지켜보던 와중에 2022년 11월 두산베어스의 11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김태형 감독의 색깔이 강했던 두산 베어스 사령탑에 삼성 라이온즈의 레전드 이승엽이 온다는 것도 대단히 이례적이었던 데다가 선수 경력은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지도자 경력이 없는 인물을 파격적인 대우로 감독으로 선임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커보였다. 이승엽 감독의 2년은 주축 선수들이 이탈했음에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낸 결과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승엽의 두산야구를 대표하는 “투마카세”_많은 구원투수를 쏟아붓는 불펜 운영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신조어_라는 희대의 투수운영방식은 두산팬들이 분노하는 원인이 되었다. 투수 혹사로는 일가견이 있는 김태형 감독의 투수 운용을 오랫동안 지켜본 두산팬들이지만 경기 흐름과 관련 없이 원칙도 이유도 없이 반복되는 투수 기용으로 선수는 선수대로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고 성적은 성적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끈끈한 야구를 선보여서 붙은 별명 “Miracle 두산”, “Hustle 두”의 명성은 온데간데없고 경기 내내 선수들이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팬들의 원성은 커질 대로 커졌다.

두산 베어스 중간 계투 투수들의 홀드와 이닝_6월 1일 기준

중간 계투 투수의 역량을 잘 보여주는 지표인 홀드_불펜 투수가 세이브 조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팀이 리드 상태를 유지하며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여한 지표_를 기록하는 투수가 투구 이닝에 비해 매우 적다는 것이 이승엽 감독의 투수운용의 문제점을 가장 잘 보여준다. 두산은 양질의 불펜투수를 풍족하게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기고 있는 상황, 지고 있는 상황, 접전 상황에 마구잡이로 끌어 쓰면서 소진하고 있다.


자서전 『나. 36. 이승엽』에서 고집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고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물론 그 고집은 선수 이승엽의 성공을 이끌어온 원동력이 되었겠지만, 지도자로 성공적인 안착을 하는데 발목을 잡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프로야구 시즌은 6개월 동안 144경기를 치러야 하는 장기 레이스다. 나 혼자만 생각하고, 오직 내가 옳다는 고집을 부려서는 수십여 명의 선수단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


몇 주동안 이승엽 감독의 사퇴 관련된 소문이 이어졌고, 오늘 결국 사퇴 소식이 전해졌다. 어쩌면 현장에서 선수들과 스킨십이 전무했던 슈퍼스타 이승엽을 덜컥 감독으로 선임한 구단 책임자의 섣부른 결정으로 두산 베어스 구성원과 두산 베어스를 사랑하는 팬들을 오랫동안 힘들게 했던 게 아닌지 성찰해보았으면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프로야구 인기에 기생하는 암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