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선택한 복수
살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군가에게 굴욕도 당하고 괴롭힘도 당하는 게 인생이다. 비교적 평탄하게 보낸 유년시절에 비해 직장생활을 시작하자 온갖 인간군상들을 겪게 되면서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괴로운 상황을 오래 겪지 않은 편이다. 크게 중요하지 않고, “짜증”정도에 그치는 대수롭지 않은 상황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조금 심각한 문제라면 아예 바깥으로 탈출해 버리는 해결책을 택하기 때문이다.
드물긴 하지만 응징과 복수를 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방법은 조금은 은밀하고 의뭉스러워서(?) 응징의 대상들은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 나만의 기술이다. 복수라고 하기도 민망한 소소한 것들일 때가 대부분이었던 탓이리라. 억울하고 분한 일을 겪고, 하찮은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잊고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자기가 받은 모욕을 절대 잊지 못하고 마음속 깊이 응어리로 남겨두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나 큰 모욕과 수치심을 느껴야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던지면서까지 복수를 선택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 굴욕과 비참함은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자가발전하면서 필요이상으로 증폭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직 상대를 파괴하려는 목적에 경도되어 자신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쯤은 안중에도 없어져야 그러한 복수가 가능해진다.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복수를 택하는 건 대체 어떤 좌절감을 느껴야 가능한 걸까. 정신적으로 병들지 않고서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넷플릭스 범죄물에서나 보는 사건들이 매일 보던 평범한 이웃에 의해서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보니 오싹한 기분이 든다. 누가 그런 파멸을 향해 곪아가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슬프고 답답하다.
*메인 이미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복수는 나의 것_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