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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Dec 24. 2022

크리스마스 선물

42년 전 아버지가 아닌 아빠였던 시절에 주신 머플러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42년 전 아버지가 아닌 아빠였던 시절에 주신 체크 머플러다. 나는 이 머플러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중학교 시절까지 겨울만 되면 10여 년을 두르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옷장 깊숙한 곳에 보관하는 물건이 되었고, 그게 벌써 42년이 되었다.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해주셨는지 의심한 적이 없을 만큼 아버지는 나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요즘은 위험하다고 꺼리는 놀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태워주는 비행기는 얼마나 신났었는지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걸 보면 꽤 커서까지 비행기 놀이를 해주셨나 보다. 여행을 많이 하고, 해외 생활을 꽤 한 것도 

아버지가 비행기를 많이 태워주셔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 부모님이 부부 동반으로 집안 모임이 있거나, 친구들 모임이 있어도 아버지는 집에 있는 내가 걱정된다고 서둘러 돌아오셨다. 어머니가 타박을 할 정도로 지극한 아버지의 사랑은 내가 중년이 되어도 여전했다. 심지어 늦깎이로 자전거를 배울 때 백발의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잡아주시기도 했다.  

나는 평생 아버지를 무척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아버지는 동년배 다른 어른들에 비해 키가 크고 인물이 훤칠해서 어딜 가도 눈에 띄어 어린 시절에는 함께 걸을 때면 내 어깨도 으쓱해졌다. 그 옛날 어려운 집안의 7남매 중 둘째 아들이어서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하셨지만 아버지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아는 것이 많았고, 배우는 걸 좋아하셨다. 환갑이 넘으셔서 스스로 컴퓨터를 배우셨고, 내가 싱가포르에 살 때 아버지께서 70대 중반이었는데 스카이프로 전화를 하실 정도로 총명한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돌아가시기 1~2년 전 나는 아버지께 모진 말을 많이도 쏟아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미워한 적 없었는데 아픈 어머니가 가엾어 그 원망이 온통 아버지에게 향한 것이다. 엄마를 좀 더 아껴주시지, 좀 더 사랑해 주시지, 엄마한테 좀 더 베풀어주시지… 이런 아쉬움을 아버지에게 큰소리 내어 화를 내기까지 했다.  엄마를 좀 더 아껴주고, 사랑해 주고, 베풀었어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어리석게도 아버지를 원망한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거짓말처럼 아버지께서 뭐가 그리 급하신지 세상을 떠나셨다. 그 건장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가장 작고 가녀린 모습으로... 


아버지를 여의고도 아픈 어머니를 돌보느라 슬퍼하고 그리워하지도 못했다. 지금도 꿈에 어머니는 자주 보이지만, 아버지는 영 나타나지 않으신다. 너무나 사랑했는데 미처 말하지 못해서 토라지신 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들인 포인세티아를 지켜주지 못해 시들어버리는 걸 보니 이번 크리스마스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아버지가 선물해준 머플러로 따뜻했던 그 많은 겨울날들이 그리운 크리스마스이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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