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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Nov 16. 2022

가을로...

수능의 계절, 엄마가 보고싶다.

이윽고 가을이 그 모습을 감추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하늘을 올려다보니 가을이 이미 끝나 있었다. 하늘에는 이미 상쾌한 가을 구름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그 대신 잔뜩 찌푸린 두꺼운 구름이 마치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사자처럼 북쪽 산등성이 위에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시에 있어서 가을은 기분 좋고 아름다운 방문객이었으나, 머무는 기간이 너무나도 짧고 또 그 사라짐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_무라카미 하루키』 중에서…


X세대의 고3도 지금의 고3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공부했던 고3 에게는 좀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2023학년도 수능 응시자는 508,030명인데 반해 1991학년도 대입 응시자 수는 951,048명으로 거의 2배의 수험생이 경쟁을 치렀다. 1991학년도 전기대 경쟁률 4.5대 1, 후기대 경쟁률 4.55대 1로 꽤 치열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고3 시절은 공부보다는 딴생각만 잔뜩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렇지 않아도 공부를 하지 않던 내가 고3 시절 더 공부를 하지 않게 된 시점은 지금도 명확히 기억한다. 


고3이 시작될 무렵 무심코 학교 앞 화단을 들여다보다가 공부에 손을 놓게 된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화단의 흙을 쳐다보니 저 흙도 예전에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고 흙으로 돌아가기 전 부푼 꿈을 간직한 사람이었겠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더니 하염없이 허무해져서 “공부는 해서 뭐하나”싶었다. 


18년 동안 살아보니 내가 천재가 아닌 건 너무나 잘 알겠고, 세상을 바꿀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생, 어차피 머지않아 죽으면 살았던 흔적조차 남지 않을 텐데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지 않아도 빈둥대는 기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남들은 피 터지게 공부했던 고3 시절 공부를 작파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반응은 “공부나 해”일 게 뻔해서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거의 반년 넘게 슬프고 무서운 허송세월을 하다가 은행잎 단풍잎 물드는 시기가 되어 이렇게 고3을 보내면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자각이 들어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나 죽는 게 너무 무서워. 죽으면 그냥 끝이잖아. 근데 뭐하러 죽을 둥 살 둥 공부해야 하나 싶고,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 고3을 이렇게 보내는 거 아닌 것 같긴 한데 공부는 못하겠고… 화단의 흙을 보니 흙 한 줌도 오래전엔 사람이었겠지 이런 생각이 들고 내가 죽을 때까지 칫솔을 몇 개나 쓰면 죽게 될까 이런 계산이나 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잡생각만 들어. 나 어떡해야 해?”

그런데 엄마는 예상과 달리 내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그래, 죽으면 끝이긴 하지. 그래도 언제 죽나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살면 시간이 더 아깝지 않아? 사는 날까지는 열심히 살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엄마의 반응에 용기를 얻은 나는 정말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엄마, 엄마는 죽는 거 무섭지 않아?”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섭지. 무서운데 엄마한테 네가 있잖아. 내가 죽어도 네가 있으니까, 자식이 있으니까 괜찮아.”

엄마가 그 말을 하자 눈물이 터져 나와서 엄마랑 끌어안고 엉엉 울고 말았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오랫동안 괴롭혔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허무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잡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아깝다는 깨달음이 들었고, “죽음”이란 책을 한 번에 덮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도 공부라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고, 대학은 똑 떨어지고 말았다. 소설이나 드라마라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대학입시에 합격했을 텐데 현실은 역시 현실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언제나 내게 절대적인 지지와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엄마는 죽음의 두려움마저 이기게 했던 나를 남기고 지난가을, 멀고 먼 곳으로 떠나셨다. 엄마가 세상에 남긴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께.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께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 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 줘요.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께.

<시를 위한 시_이영훈 작사, 이문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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