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와 조언이 필요 없는 인간관계

차갑지만 정직한 현실에서 길 찾기

by Rosary

사람은 다양한 인간관계로 얽혀있다.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라면 가족, 학교, 직장, 지역사회 등등 사람과 만나고 부딪히는 일을 피할 수 없다. 소위 “인맥”을 중요시 여겨 핸드폰 연락처에 있는 사람이 몇백 명, 혹은 천여 명까지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핸드폰 화면 한 페이지에 담기는 단출한 사람도 있다. 지극히 개인의 성향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낫고 못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경우는 후자 쪽이다.


한 때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만나면서 친목과 사교를 즐겼던 적도 있다. 그들 중에는 상당히 좋아하고, 꽤 절친한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만남이 이어지면 개인적인 문제든, 공적인 문제든 고민을 토로하기도 하고, 조언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긴 하지만 충고나 조언을 하지는 않는다. 고3 시절 절친과 있었던 씁쓸한 기억으로 인해 생긴 성향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붙어 다녔던 단짝친구는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모르게 그늘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궁금해하지도,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냥 뭔가 사정이 있으려니 했다. 시종일관 세상 근심 없고 거침없던 내 모습이 그 친구는 좋아 보였는지 내게 늘 호의적이었고, 양보도 많이 했다. 고3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


가정문제, 이성문제, 진학문제 등등 광범위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때로는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수십 장의 원고지에 꾹꾹 눌러쓴 편지를 건네기도 했다. 그 친구와 아주 많이 가까워진 뒤였던지라 친구가 “시간 있어?”라고 물을 때마다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고, 그의 다양한 고민도 듣고, 나름 많이 생각해서 정성껏 해결방안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고3 여름방학을 마치고 가을이 시작될 즈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많은 고민을 나누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언제나 친구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건 아니라고, 백날천날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어차피 자기 마음대로 할 거면서 왜 내 시간을 뺏는 건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시가 귀하고 아까운 고3 수험생의 시간을 말이다. 가을이 되면서 그 친구를 피하기 시작했고, 고민을 들어주지도 않았다. 가장 친했던 친구와 멀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물론 그 친구가 유난히 피곤한 성향이기도 했지만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기도 하면서 느낀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매사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니까. 스스로 어느 정도 결정한 것을 누군가의 조언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에게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경우는 다르겠지만 학교 친구나 직장동료와 대화로 해결책을 찾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적정한 한도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 수 있다. 치명적인 위험에 빠진 게 아니라면 누군가의 인생에 섣불리 개입하기보다는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때 힘이 되어주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자기 마음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건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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