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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an 15. 2023

모성을 거부하는 어머니

The Evil Mothers. 1894


어떤 그림이 마음에 확 들어올 때가 있다. 오래전 유럽배낭여행 당시 미술관에서 많은 그림을 봤지만 클림트 그림을 보러 갔던 벨베데르궁에서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클림트의 그림이 아니었다. 지오반니 세간티니(1858~1899)라는 낯선 화가의 그림 앞에서 발길이 머물렀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벌판에 선 나무에 매달린 여인의 표정은 환희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괴로움에 뒤틀려 보이기도 한다. 여인의 젖을 물고 있는 아기 모습은 아주 나중에 발견하게 되었다. <나쁜 어머니들> 연작 중 하나로 이 여인은 아기를 소중하게 품는 보통의 어머니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젖먹이 아기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뒤틀림으로 보이는 건 현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아 보인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양육 의무는 저버린 채 자식의 재산은 상속받으려는 부모들을 막으려는 ‘구하라법’이 등장하기도 했다.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자라는 사람이 대부분이긴 해도 부모를 일찍 여의거나 학대받거나 버림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  

The Angel of Life. 1894

세간티니는 일곱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계모에게 세간티니를 맡기고 밖으로만 돌다가 객지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했다. 오랫동안 고독하게 살던 세간티니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것은 절친 카를로 부가티의 동생 비체를 만나면서였다. 비체와 살면서 5년 동안 네 명의 아이를 낳은 것만 봐도 부부 금슬이 얼마나 좋았는지 짐작할 만하다. 세간티니는 30대 중반까지 읽고 쓸 줄 몰랐는데 비체와 살면서 글을 익혀  미술잡지에 기고할 정도로 글쓰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Life 1898

내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The Evil Mothers. 1894>와 달리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에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어린 시절 혼자되는 과정에서 국적마저 잃게 된 세간티니는 죽을 때까지 평생 무국적자로 살았고, 법적인 결혼이 불가능했는데 이는 교회에서 허락하지 않는 일이라 세간티니와 비체 부부는 알프스 깊은 산속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Death. 1898

세간티니의 알프스 그림은 인기를 얻었고 그는 주문받은 그림들을 그리기 위해 알프스를 자주 오르내려야만 했다. 그런 고된 작업이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되어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알프스를 가장 알프스답게 그렸던 화가 세간티니는 죽은 다음에야 스위스 시민권을 얻게 되었고 생 모리츠에 그의 미술관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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