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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an 17. 2023

더 매뉴얼

AI가 아닌 사람이 상담을 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최근 고객 서비스 센터에 전화하다가 상담원과의 불통 때문에 속 터졌던 경험이 여러 차례 있다.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폭언을 한 게 아닌데 상담원이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나 의문이 들 만큼 소통이 안된다는 걸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나도 반년 정도긴 하나 고객센터 상담원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업무강도가 상당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 상담원과 통화할 때 가능하면 상냥한 고객이 되려고 하지만 요즘 통화하는 몇몇 상담원들은 사람이 아니라 AI와 통화하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로 매뉴얼에 의한 응대만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몰 후 쓰레기를 내놓아야 한다는 지침을 철저히 따르는 편이어서 어제도 저녁을 먹고 8시 30분쯤 쓰레기를 내놓으러 나갔는데 돌아와서 굳게 잠긴 도어록은 1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비밀번호를 아무리 눌러봐도 꿈쩍을 안 하는 것이다. 후리스만 걸치고  핸드폰도 없이 나왔는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른 곳에서 외박하게 될지도 모르니 현금이 필요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은행 바이오 인증을 해놓아서 늦기 전에 ATM 가서 현금 인출부터 했다. 


돌아와서 다시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오류 신호음만 나오고 도어록은 그대로였다. 마침 배달음식이 도착해서 옆집 이웃이 나와서 상황을 보더니 감사하게도 핸드폰으로 도어록 AS 센터에 전화를 해주셨다. 상담원에게 도어록 신호음을 들려주니 비밀번호를 잘못 누른 경우의 신호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어록 교체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 기사 방문 요청하면 보내겠다는 것. 비용은 20만 원 이상이라는 것. 


내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신호음이 나는 걸로 봐서 건전지 방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사한 후 바꾼 적이 없는 비밀번호가 제 마음대로 바뀐 것도 아닐 텐데 비밀번호 오류라니… 아닌 밤중에 느닷없이 20만 원 넘는 쌩돈이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런 내 사정이야 상담원에게 알 바 아니겠지만 다양한 상황에 대한 누적 데이터가 분명 있을 텐데도 AS 기사 방문에 대해 동의와 비동의를 선택하라는 답변만 돌아오니 굳이 사람이 전화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상담원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렇다고 냅다 도어록을 교체하기에는 20만 원은 큰돈이어서 판단을 보류하고 통화를 끝냈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다시 비밀번호를 눌러봤더니 띠로리 하면서 도어록 잠금해제 신호음과 함께 문이 열리네? 도어록이 열린 것은 천만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괜한 돈을 쓸 뻔한 사실에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몰라서 건전지도 교체하고, 비밀번호도 재설정했지만 외출하기가 겁난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뾰족한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물론 도어록이라는 게 범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예민한 기계장치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늦은 밤 문밖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사용자가 할 수 있는 매뉴얼이라고 해봐야 아무리 잠깐 나가도 핸드폰은 항상 가지고 나갈 것, 너무 늦은 시간에 외출하지 말 것. 이 정도라는 사실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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