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면...

by Rosary

나는 행복했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행복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흘러간 뒤에야 그것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했고 행복하다는 걸 실감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순간이 있다. 오랫동안 염원하던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확인했을 때,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행복의 순간을 확실하게 느끼고 기억하는 순간은 아주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참 행복했구나 깨달을 때가 훨씬 많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인생의 전반기는 대체로 행복했다. 부모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고, 친구들도 많았고,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행운도 따랐다. 그러나 행복 한가운데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지금 그 모든 것이 사라지자 아 그때 정말 행복했구나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있을지언정 갈망하지는 않는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지금의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좋은 것은 임플란트 없는 치아, 몇 시간을 걸어도 끄떡없는 다리, 책 읽는데 어려움이 없는 시력,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이 없는 것… 이런 평범한 신체적 기능이 얼마나 좋고 감사한지 주위를 둘러보면 알 수 있다.


중년이 되면 혈압약, 당뇨약 등을 먹기 시작하는 친구와 지인들이 흔한 것은 물론이고 질기고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무릎이나 허리가 아파서 얼마 걷지 못하거나, 안과적 수술을 했거나,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고, 식사도 신경 쓰고, 병원에서 정기적 검진받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나는 나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후가 되면 나는 알이 고운 모래를 한 움큼 집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즐겼다. 손은, 우리 인생이 새어져 나가는 결국에는 모두 사라지고 마는 모래시계였다. 손 그 자체도 사라졌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내 인생이 언제 사라질지는 알 수 없지만 존재하는 그 순간까지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의 순간이 사라졌을 때 아쉬워하거나 후회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 훨씬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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