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없는 마음으로 평생 살 수 있을까
가진 것도 없고, 함께 사는 가족도 없으면서 그래도 내 삶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욕심 없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욕심 없는 삶’을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루하루 돈에 쪼들리고, 사람에 시달리면 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참거나,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여행 갈 여력이 없어서 못 가거나, 훌쩍 오른 가스 요금을 아끼려고 보일러 가동을 망설이거나 한 적은 없다. 그러니 나는 더 부자가 되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경쟁하는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거나 할 당위성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은 곧 인맥이라면서 스마트폰에 연락처를 꽉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편도 아니다. 친구가 많았던 적도 있었지만 글쎄 그때 특별히 그 친구들이 나를 채워줬던 기억은 없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여행도 하면서 즐거웠던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 6년을 살았지만 외로움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 거짓말 같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당시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그립거나 보고 싶거나 한 적도 없다. 부모님이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사랑했고,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어져서 말할 수 없이 그립고 보고 싶지만 그때는 그랬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고, 만족스러웠다. 하던 일이 잘되었다면 귀국하는 일도 없었을 거고, 그랬다면 부모님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때 일이 잘 안되서 귀국한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도 없었다. 자식들 하는 일을 싫다고 한 적 없었고, 가로막거나 참견한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식들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길 바라셨고, 그 일을 오래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부모님은 악착같이 돈을 벌거나 모으지 못했다. 평생 자식들에게 그걸 두고두고 미안해하셨으면서도 자식들도 돈을 따라가지는 않길 바라셨다.
부모님의 그 ‘욕심 없는 마음’을 내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내 삶을 스스로 건사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부모님에 비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 속에 살 수 있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할 수 있었고, 사리 분별할 줄 알고, 감정 표현 확실하고, 취향이 뚜렷하고, 모험심이 넘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까지 ‘건강한 몸’도 물려받았다.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