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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

모든 걸 잊고 싶은 학폭 가해자들에게…

by Rosary

학교폭력과 관련된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1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인기몰이 중인 <더 글로리>가 학교폭력에 대한 복수 혹은 응징에 관한 이야기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의 투수 안우진은 의심이 필요 없는 실력이지만 고교시절 학교폭력 이력으로 WBC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고, 이에 대해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2021년부터 SSG 랜더스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가 21일 한인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안우진의 WBC 합류 불발을 안타까워하며 ‘한국은 용서가 쉽지 않은 사회’ 운운해서 여론의 융단폭격을 맞고 있다. 25일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유명 여행 유튜버 곽튜브(본명 곽준빈)는 본인이 학창 시절 학폭의 피해자였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기까지 했다는 고백을 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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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인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자숙하거나 퇴출되는 수순인 반면, ‘학폭 피해자’였음을 고백한 이들에게는 응원과 격려가 이어지고 있다. X세대였던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교사가 학생들에게 훈육을 가장한 폭력을 행사했던 기억은 남아있지만 친구들 간의 지속적인 폭행, 괴롭힘, 따돌림 등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물론 당시에도 품행이 불량했던 학생들이 돈을 갈취하거나 패싸움을 벌였던 적은 있지만 학급, 혹은 학교 전체가 나서서 특정 학생이 자살까지 고민할 정도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일을 본 적이 없었다. 성격이 특이하거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들에게도 한두 명의 친구는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부터는 따돌림당하는 아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순간 같이 따돌림당하는 세태에서 고통받는 친구를 구제하는 일도 원천봉쇄되는 분위기다.


사람이 가장 절망적이고 자괴감이 드는 건 내 편이 없을 때다.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지지하고 감싸주는 사람이 있다면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을 텐데 구성원 전체가 누군가를 괴롭힌다면 그걸 견뎌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아동 청소년기 12년간 학교는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공간인데 지옥 같은 일상이 계속된다면 어찌 견디겠는가. 그나마 부모와 원만한 관계라면 도움을 요청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 고통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고, 어린 나이에 세상의 전부와도 같은 학교를 그만둔다는 결심도, 실행도 보통 일은 아니다. 피해자들이 가장 힘든 순간은 ‘피해자가 원인 제공을 했을 것이다’, ‘당해도 싸다’는 의심과 편견의 시선을 받을 때일 것이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도 마땅한 경우는 없다.

20070523_1.jpg 평온한 얼굴로 신에게 용서받았다는 <밀양>의 유괴살인범 박도섭

피해자들이 가장 분노하는 건 세월이 흘렀다는 이유로,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무시하거나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가해자들의 태도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격은 깡그리 무시하고 자기 기분대로 남을 짓밟았던 가해자가 다시 자기 앞길 가로막지 말라는 식의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화해와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지 가해자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처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해야 화해든 용서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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