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는 어려워

식집사에게 쉽지 않은 장기여행

by Rosary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다. 이번 달에는 무슨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볼까 생각하다가 ‘도서관 출근’을 하기로 했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긴 하지만 주로 대출을 하기 때문에 도서관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심지어 도서관에 가서 읽을 책을 고르기보다 무슨 책을 읽을지 정하고 가기 때문에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은 보통 10분 내외였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고 하니…


이번에 대출한 책들을 제때 반납하지 못해 한동안 대출이 어려워진 것이다. 책은 읽고 싶고, 대출은 안되니 도서관에 가서 읽는 수밖에… 이사 올 때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는데 걸어서 10분 정도면 도서관에 닿을 수 있다는 뜻밖에 장점이 있는 집이었다.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이후 도서관은 나의 도피처 같은 곳이어서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뿐 아니라 특징이 있는 여러 도서관을 기분 따라 이용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사 와서는 집에서 10분 거리의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책 읽기도 아주 좋은 곳이었다. 종합 자료실의 열람석은 대부분 열공하는 분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그곳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책을 읽는 건 뭔가 눈치가 보였는데 지하에 위치한 ‘북카페’는 책 읽기에 아주 편했다. 비치되어 있는 책들 중 무슨 책을 읽을까 쓰윽 살펴보다가 표지가 예쁜 『이웃집 식물 상담소』가 눈에 들어왔다.

비주얼에 약한 내게 여전히 책 고르는 1순위는 어쩔 수 없이 표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리에 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의 내용이 제목과는 다르게 상담이라기 보다 질책 같은 느낌이 있었다. 초보 식집사들이 꾸지람을 듣는 기분이라는 서평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빛을 많이 보고 자라야 하는 호주 매화의 생장 환경과 특성을 모른 채 들였다가 얼마 되지 않아 시들시들 빛을 잃어가는 경험을 한 후 화분 들일 때 우리 집에서 잘 자랄 수 있는지 따져보고 들여서인지 수긍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 난초 이야기가 뭐였던가 싶어서 집에 돌아와서 찾아 읽었더니 최근의 내 경험과 맞닿은 내용이라 공감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요약하면 스님이 3년 동안 난초를 애지중지 키우면서 난초의 은은한 향기와 아름다운 꽃을 만끽하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돌본 것이 ‘집착’이었음을 깨닫고 친구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요즘 긴 여행을 계획하다가도 화분들 걱정에 짧게 다녀와야겠다 싶었던 마음이 법정 스님의 그 마음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3년 동안 잘 키운 화분이 한순간 어이없이 죽어버린 후 식물 돌보는 것에 더 예민해진 것이다. 시들해진 벨벳 싱고니움과 포인세티아를 살려보겠다고 물꽂이 한지 20일이 넘어가는데 죽지 않고 살리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물꽂이를 했으니 화분에 물 주는 걱정 없이 길게 여행 가는 게 어쩌면 가능할지도… 아직 내게 무소유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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