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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llus May 19. 2024

나 홀로 이탈리아 여행기_06

20240426 - 20240508

카세르타 성 Reggia di Caserta으로 들어가는 매표소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성 안으로 들어오니 필드 트립으로 방문한 아이들 그룹이 몇몇 보였다. 구글 리뷰 중에서 정원 끝까지 걸어 올라가려면 대략 한 시간이 걸리니 꼭 물을 들고 가라는 조언들이 눈에 띄었기에 나는 카페테리아에서 물 한 병과 누뗄라 B-ready를 하나 사서는 출발했다. 사실 난 처음부터 오르막길을 걸어갈 생각은 없었고, 셔틀버스(2.5유로)를 편도로 탈 생각이었다.


셔틀버스가 선불인지 후불인지, 미리 티켓을 따로 끊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버스 근처에서 기웃거렸더니 기사님이 호쾌하게 타라고 손짓을 한다. 대충 후불인가 보다 하고 일단은 탔다. 버스는 정원을 쭉 올라가 정원 맨 위에 위치한 잉글리시 가든 English Garden 앞에 내려준다. 웬일인지 몰라도 기사님은 돈을 받지 않았다. 내 뒤로 내린 이탈리아 남자애 둘 다 뭔가 질문하고는 땡큐하고 내리는 걸 보니 대충 그들도 공짜이지 않았나 짐작할 따름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찍은 사진. 저 끝에 카세르타 성이 보인다.


카세르타 성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구글맵에서 확인했을 때도 정원의 크기가 얼마인지 가늠이 잡히지 않더라니, 실제로 들어와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으며, 실제로 왕족들이 살았던 곳 중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베르사유보다도 크단 얘기이다.


Fontana di Diana e Atteone

버스에서 내리면 이 분수가 제일 먼저 보인다. Fontana di Diana e Atteone. 그리스 신화를 본 사람이면 알 만한 장면이다.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장면을 본 죄로 아르테미스의 저주를 받은 악타이온은 사슴으로 변하여 사냥개에게 물어뜯긴다. 악타이온의 사슴머리를 보니 마치 눈앞에서 변하는 모습을 포착한 것만 같이 생동감 있다.


잉글리시 가든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입구로 들어가면 예쁜 길이 나온다. 정원 곳곳에는 지도가 세워져 있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럴 때는 구글맵이 최고다.



꽃이 피어있는 고요한 길을 걷다가 나오는 비밀통로를 지나면 The Bath of Venus가 나온다.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비너스가 무릎을 꿇고 목욕하는 장면을 내가 우연히 목격하게 되는 것만 같은 구도다. 기억하자. 우리는 잉글리시 가든에 들어오기 전에 아르테미스의 목욕을 훔쳐본 악타이온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이미 보았다.



비너스를 지나 남쪽으로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Temple des Seerosensees 가 나온다. 유독 이 이름만 번역기에 제대로 먹히지 않아 애먹었는데 단어를 조각조각내서 대충 분석해 보면 연꽃의 신전인 것 같다. 연꽃의 신전에 연꽃이 피는 시기에 방문하다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계속해서 남쪽으로 길을 걷다가 한 이탈리안 가족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게 되었다. 아빠로 보이는 인간이 쟈포네 오어 치나,라는 말을 한다. 가족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 아저씨가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는 탓에 나는 확실하게 듣게 되었다. 덧붙여 이 넓은 정원에서 동양인이라곤 꼴랑 나밖에 없었기에 아저씨가 뜬금없이 일본과 중국 이야기를 하는 중이 아니었다면 120프로 내 이야기임이 확실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도 피렌체에서 한 남자가 나를 쳐다보더니 일행에게 "쟈포네"하고 불쑥 내뱉는 걸 겪었더랬지. 대체 왜 저러는 걸까? 그거 맞춰서 뭐 하게? 그나마 다행인 건 그의 자녀 셋과 여자는 조용했다는 점이다.



성으로 이어지는 길을 쭉 걷다 보면 이런 분수가 세네 개쯤은 나온다. 하나하나가 트레비 분수같이 규모가 커서 보는 맛이 있었다. Fontana di Eolo. 아이올로스의 분수다. 애석하게도 이 양반은 누군지 모르겠네. 그리스로마신화는 다시 읽어도 다시 읽어도 대충 트로이 전쟁 이후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 흉흉하게 생긴 몬스터들은 뭘까 하고 검색해 보았더니 Fontana dei Delfini. Delfini가 무언가 찾아보았더니 놀랍게도 돌핀, 돌고래란다. 이게? 정말로? 돌고래라고? 옛날 사람들이 돌고래가 뭔지 모르고 새긴 건가? 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사자 박제를 만들어야만 했던 스웨덴의 가여운 박제사처럼.



이런 데서 원앙을 보니 어쩐지 반갑다. 잉글리시 가든에서 여기까지 내려오기까지 대략 한 시간 반 동안 동양인은 딱 한 번 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유독 동양인들을 보지 못했다. 여행 가서 동양인들, 특히 같은 한국인들 많은 곳 피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글쎄다... 나는 개인적으로 쏘 화이트한 곳이 더 불편하다. 어딜 가도 인종 구성은 다양한 편이 마음이 편하다.



이제는 성 안을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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