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 20240508
28일 아침, 혼잡한 테르미니역. 여행을 계획했을 당시의 나는 미래의 내가 로마에 도착한 다음 날 몇 시에 일어날지 예상이 불가능했다. 피곤에 찌들었기에 늦게 일어날 수도, 시차 적응을 못했기에 새벽에 눈을 뜰 수도 있었다. 그래서 기차편의 가격대만 알아두고 미리 예약해두지 않았다. 미리미리 예약하면 싸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 시간에 맞춰서 움직이게 되는 건 나같은 여행자의 스타일엔 맞지 않다. 내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둔 것은 갈 도시와 호텔, 그리고 딱 하나의 투어, 그리고 몇몇 단거리 기차 정도였다. 테르미니역에 와서 나는 피렌체 행 이탈로 Italo 기차를 기계에서 예약하곤 바로 탔다. 다행히 지연delay은 없었다.
내가 앉아야할 자리를 찾고 보니 뒷좌석의 사람이 옷을 이렇게 걸어 놓으셨다. 이런 황당한 경우는 또 처음이라 뒷좌석을 쳐다 보았지만 마침 옷을 걸어둔 장본인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 옆에 앉아계신 분께 일행인지 물어보았지만 불행히도 그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아쉬운대로 통로 건너 옆에 앉아있는 젊은 커플과 대화한다.
"이거 치워도 되겠지?"
남자애는 어깨를 으쓱한다.
"응, 치워도 괜찮을 것 같아."
뭐, 이탈리아 사람이 보기에도 치워도 될 것 같다면 내가 알아서 해도 되겠지. 웬만하면 남의 소유물은 만지고 싶지 않지만 이건 내 자리였기에 바로 치워버렸다. 다행히 열차 출발후 자리에 다시 돌아온 아주머니는 자신의 재킷보고도 별 말 하지 않았다.
피렌체 베키오 다리.
새벽 6시에 눈을 떠 부지런히 설친 탓에 피렌체에 너무나 일찍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베키오 다리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오전 10시 30시밖에 안 된것이다. 새벽형인간이 인생에 겪을 일 없는 미라클모닝이었다.
슬슬 배가 고파져 예전에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던 곳을 다시 찾았다. 아직 오픈하지 않아 나 외에 한 커플이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맞은 편에 서서 기다렸더니 저 뒤로 미국인 커플이 또 슬금 다가와 새치기를 하더라. 딱히 몇 명 없었고 따지기도 귀찮아 대충 놔두었다.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메뉴를 찾았으나 애석하게도 없어졌다 했다. 계속해서 메뉴를 바꾼다고 했다. 덕분에 예전에 기록해두었던 인**그램을 뒤져 블루치즈트러플, 프로슈토의 조합의 샌드위치였다는 것을 찾아냈다. 거기에 모짜렐라 치즈와 양상추까지 추가해서 맛있게 한입을 베어물었으나 아뿔싸, 그 당시 기억했던 맛이 더이상 아니더라.
7년 전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영국 워킹홀리데이에서 패배하여 한국에 돌아올 무렵 들렀던 이탈리아였다. 우중충한 회색 하늘 밑에서 아무 맛도 없는 음식들만 먹다가 갑자기 해가 화창한 이탈리아로 왔으니 뭘 먹어도 맛있었을 터였다. 나는 짜디짠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 남긴 1/3정도를 쓰레기통에 밀어넣었다. 추억의 맛은 추억으로 남겨둬야 한다.
그 다음 목적지인 보볼리 정원으로 향하는 길, 이번 여행 첫 젤라또를 사먹는다. 베르가못맛과 딸기맛. 스몰. 이탈리아는 젤 작은 스몰 젤라또에 기본적으로 맛 두 가지를 넣어준다. 다행히 젤라또는 아주 맛있었다.
보볼리 정원에 도착했다. 두 번째 방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