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1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여행기와 다소 결이 다른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내 가슴 속에 트라우마처럼 박혀있는 기억들을 풀어놓기 위해서다. 지금 다시 보니 2024년 8월 1일에 썼던 글이다. 밤새 두서없이 써내려가다가 임시저장만 하고 발행은 하지 않았었다. 시기에 맞게 터진다면 아마 누군가의 밥줄은 끊길 수도 있을법한 그런 일이었다. 나한테는 친절했으나 장애아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들 쉬쉬하는 일이었고 또한 물증도 없는 일이다. 아무튼 그 일 때문에 나는 학교에 가는 장애아 가방에 녹음기를 넣는 일을 백 번 이해하게 되었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런 억울함은.
최근에 벌어진 일이 아닌 몇 해 전에 벌어진 일임을 미리 밝혀둔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인물에 대해서는 일부분을 각색하였으며 또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내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일이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폭로에 가까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을 입증해줄 증거 역시 없으므로, 학교 측에서 그런 일이 없었다!고 주장하면 나는 할 말이 없다. 하하.
나는 내 사정상 봉사활동 시간이 필요했다. 범죄를 저질러서 따위의 이유는 아니다. 내가 들어가기를 희망했던 곳이 상당한 봉사활동 시간을 요구했기때문에 동네에 있는 특수학교를 골라 자원봉사자로 신청했다. 쓰다보니까 생각이 나는데, 여기저기 단발성으로 자원봉사하는 것이 지쳐서 지속적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을 택했던 것도 같다. 장애아동 도우미도 가봤고, 노인복지회관 같은 곳도 갔었다. 노인복지회관이었는지 주간돌봄센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 안나는데, 거기 있던 관리자의 태도만큼은 똑똑히 기억난다. 가자마자 어떤 지시도 없었고, 두리번거리며 일거리를 찾던 나에게 이상한 트로트 노래에 맞춰서 율동을 하라고 시켰다. 오빠오빠 거리는 노래 가사도 그것에 맞춘 율동도 매우 극혐이었던 나는 죄송하지만 다른 일을 하면 안될까, 청소나 설거지같은 일이 없을까요, 하고 정중하게 여쭤보았으나 관리자는 정색을 하고는 "자원봉사는 그렇게 입맛 맞춰서 하는 거 아니야!" 하고 되려 나를 혼냈더랜다. 그렇다고 내가 내 신념에 반하는 일을 하기도 싫었기에 그럼 안하죠 뭐, 하고 바로 나와버렸다. 나아중에 그걸 내 수퍼바이저에게 말했던가, 그 이야기를 꺼낼 일이 있었는데 수퍼바이저가 "Volunteer"의 의미도 모르는 놈이네, 하고 반응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 자원봉사. 자발적으로 도우는 게 자원봉사인데 내가 싫은 일을 해야하나? 내가 그 시간동안 놀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뭐가 문제였을까? 그게 대수냐, 그냥 눈 딱감고 해라,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동요에 맞춰 춤추는 거라면 했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면 트로트에 대해 어르신들과 대화를 시작해도 지지않을 만큼 트로트를 매우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 구시대적인 노래 가사에 맞춰서 춤추기는 아직도 싫을 것 같다.
아무튼 각설하고, 다시 특수학교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최저시급보다 살짝 밑도는 돈을 받았던 것같은데 이것부터가 기억이 가물하다. 오전타임과 오후타임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아침잠이 많았던 나는 오후 타임으로 신청했다. 자원 봉사 경험이있다고 말하니 별개의 OT도 있지 않고 안전 교육에 관련된 종이 한 장 받은 게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기억으로도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도 되는거야?" 싶었다. 오후 타임은 대략 12시 반 쯤에 출근하여 아이들이 귀가하는 3시 반까지 약 세 시간 일했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반에 배정받았다. 내가 해야할 일은 A라는 아이를 돌보는 것. 한마디로 A의 전담 도우미였다. 내가 속한 반에 있던 초등학생 4명 모두 남자아이들이었다. 한 명을 빼고는 전부 말하지 못하는 무발화 아동들이었다. 교실에는 담임선생님, 나, 그리고 공익 근무 요원까지 어른 세 명과 아이 네 명이 앉아 있었다.
A는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특히나 나에게는 천사같은 아이였다. 내가 손을 내밀면 얌전히 내 손을 잡고 귀가행 버스까지 에스코트를 받았다. 게다가 그림 그리기도 좋아했다. 별 일 없으면 얌전히 그림만 계속 그리는 친구였다. 같이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이 휴가만 내지 않으면 업무강도는 아주 쉬운 편이었다. 그가 휴가를 내는 날이면 나에겐 지옥이 열렸지만 그건 별개의 일이니 다음 기회에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천사같은 A였지만 사실 A는 여러가지 사건사고를 일으킨 전적이 있었다. 나의 에스코트가 필요했던 것도 사전에 그런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안경을 쓴 사람을 굉장히 싫어해서 안경 쓴 선생님들만 보면 때린다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담임선생님이 안경을 써서 그랬었을까 짐작을 해볼 뿐이다. 다행히 나는 안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본 적은 없었는데, 내가 보는 앞에서 안경을 쓴 놀이 선생님의 뺨을 짝 때린 적도 있었다. 아무 전조현상도 없었다고 기억하지만 전문가가 본다면 다를지도 모른다. 아무튼 선생님이 뺨을 세게 맞은 순간 숨막히게 흐르던 교실 안의 정적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그 선생님이 화를 낼 거라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양손으로 아이의 손을 강하게 잡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했을 뿐이다. 정말 이성적이고 교과서적이고 또한 인간적인 반응이었다. 내가 그 학교에서 본 유일한 참어른, 참스승이며 앞으로도 내 인생 롤모델이 될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