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렇게 살아?

by 정소인

​​​​​​​​​요즘 무릎이 꽤 많이 아프다. 최근 한 달간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했고 이로 인해 아무래도 몸이 많이 지친거 같다.

오늘 밤은 꽤 오래 모르고 지냈던 가위에 눌려 잠이 깼다. 가위 중 느낀 찌릿한 두통과 아플 정도의 심장 두근거림은 ‘내가 이러다가 쓰러지고 기억을 잃는 건가?‘ 생각할만큼 순간 두려웠다.

이번 이사 준비를 하며 약이 얼마 안남았단 사실을 알았고 이사로 인해 금주 내에 갈 수 있는 병원을 급히 알아보며 약이 없으면 생길 일들에 대해 걱정하게 됐고 문득, 다시 쓰러져 병원을 갈까봐 겁이났다.

최근에는 꽤나 아픔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거 같다. 그냥 잊고지냈던거 같다. 내면의 나는 여전히 고통과 죽음이 두렵다.

요즘들어 다시금 지속적으로 아픈 무릎은 내가 고작 사람일 수 밖에 없음을, 죽음을 초월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기억하게 해준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사는지, 행복하게 사는지, 참 대단한거 같다. 나였으면 절대 그렇게 못살았을 거 같다. 어떻게 그렇게 사는거야?‘ 최근에 가까운 지인과 대화하던 중 들었던 말이다.

이때는 크게 두 가지로 답변했다.

첫 째, 더한 아픔을 이겨냈기에 덜한 아픔은 체감이 잘되지 않는다.

둘 째, 상황의 지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중을 바라보고, 현실의 부족함을 발견하여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이제와 생각들을 정리하며 마음을 돌아보니 한 가지 더 추가해야할 거 같다. 내가 마주한 여러 환경들과 경험들 속에서도 불평하거나 무너지지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을 불평하고 무너지는 것은 삶의 주체인 나에게 그 어떠한 이득도 주지 않는다.

네가 만약 현실의 상황과 부정적 경험으로 인해 불평하며 무너지려 한다면 나는 너에게 그러지 말라며 너를 품고 위로할 것이다. 하물며 나 스스로에겐 어떨까? 너에게 분명 만류하고 도울 마당에 나에게 그러지 않는 것은 말이되지 않는 역설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해소와 해결이지, 낙망과 절망이 아니다. 노력할 것이고 필요할 땐 쉬어가며 부정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나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지랄*’이 아닌 지혜이다.

*지랄: ‘간질’의 속어

어제, 오늘 무릎이 아파도 내 마음이 요동치 않는 것은 불평하지 아니하고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고통은 부족함을 기억하게 해주고 겸손하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나의 상처들을 사랑한다. 당장 오늘 쓰러져 사고로 생을 달리할지라도, 아픔으로 더욱 깊었던 나의 웅덩이는 결국 기쁨이 넘쳤고, 이는 쉬이 마르지 않아 결국 주변을 더욱 현명하게 사랑할 수 있었다.

나의 상처와 약함을 가장 잘아는 내가 비로소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이것의 끝자락만큼도 알지 못하는 저들은 결코 나의 사랑을 없이하지 못한다.

내 삶을 끝까지 사랑하여 비로소 아집과 자존의 경계를 넘어 ‘타아*’를 만나면 그 행복마저 내 품에 들어온다.

행복은 결코 행운이 아니다. 오히려 훈련이며 규율이다. 타인은 나를 비극으로 볼지라도, 나는 긍정할 때에 흔들리지 않는 일종의 ’미움 받을 용기‘를 지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

*타아: 타인의 자아

내 그릇의 밥알이 적어지는, 꽤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