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다면 차라리 나을까, 남아있다 기억은.
명백하게 무의미하다면 모를까, 공존하는 기대와 공포는 흐릿한 가치로써 아즈라이 같이 분명하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잊지 못하는 기쁨과 아픔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것들이 있다. 네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색깔 없는 또렷한 기억의 것들, 혹은 양면이 공존하는 것들.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의 일상이 그러하고, 떠나간 이와의 행복이 그러하고, 철없던 어린 날이 그러하다.
이런 기억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고, 어느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 이런 시간들은 나에게 남아있는 기억이지만 명백하게 가치있지도, 무의미하지도 않다. 그러나 나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해석 방향이 삶의 대부분을 바꾸리라 기대한다.
어떻게 해야할까, 평범하거나 색깔 없는 그런 시간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억지로 귀하게 생각하라는 말은 현실성이 없게 느껴진다. 또 그렇게 생각을 연결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들을 ’풀‘로 여길 것이다. 꽃들을 품는 수많은 풀로 생각할 것이다. 너무 많고, 개별로 구분할 수 없으며, 수도 없이 밟히는 그런 것 말이다.
풀들의 밟힘은 꽃을 향한 길을 안내할 것이고, 잠시 누워 별을 보게할 것이다.
의미 있으나 의미 없는 동일한 시간들은 이내 모여 나 있는 동산의 무게를 달리할 것이며, 장식할 것이다. 또 그 뿌리로 견디게 할 것이다.
소중하나 소중하지 않은 하루는 모여 아름다운 하나를 위한 맞이가 되리라. 오늘 견디는 시간이 쥘 수 없던 행복의 실상을 선물하리라.
밟히고 무시받는 뻔한 이 하루를 모아 네가 내 꽃을 결국 발견하도록 피워내리라.
이 시간은 풀이요, 시간의 풀이 끝에, 과거를 이해하고서 아름다운 현재를 마중하리라.
아직, 알지 못하여도 결국 풀이되는 시간의 별길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