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조금은 유별난 사람이라는 걸 잘 안다. 어쩌면 많이 아픈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 하나 제대로 못 지키면서 타인을 지켜보겠다고 무리하고.
내 마음 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누군가의 기분이 기분 상하지는 않을까 집착했다.
그러다 병이 났다.
최근 우연찮게 기회가 되어 비싼 돈 주고 정식으로 상담을 받게 됐다.
상담은 그 후기가 양지에서 서로 간에 잘 공유되는 영역이 아니곹 워낙에 비싼 돈 들어가기에 대단히 경계하는 마음과 의심하는 마음으로 여러 번 확인하고서야 시작했다.
시작 후 처음 했던 검사 결과에 대해 얘기를 들었을 때 사실 나는 가스라이팅 당하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담사께서도 인정할 정도로 늘 밝게 웃으며 잘 살아가고 있는 나인데, 검사 결과 우울증 정도가 아주 심하고 자존감이 매우 낮다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애써 “아 그런가요” 하고 하하 웃으면서 넘겼었지만 속으로는 뭔 소리야.. 생각하며 했었다.
그런데 요즘 나를 돌아보면 사실 난 참 우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맞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차분한 사람일지언정 결코 무던한 사람은 아니고, 회복이 빠를수 있지만 멘탈이 강한 사람은 아니다.
힘들 거 다 힘들고 아플 거 다 아프지만 해소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한 쪽으로 늘 치워두고 잊어버리는 방법으로 이제껏 살아왔다.
상담사분께서 “그동안 어떻게 견디며 살아오셨던 거예요?"라고 얘기했을 때 나는 그 질문 앞에 질문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다. 그저 굳어버렸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이런 상태에 무감각해지는 길을 난 선택했던 것이다. 매일의 세상이 흐렸기에 나에게는 맑은 날이 있다는 생각을 지우는 것이 방법이었다.
대인관계를 잘한다고, 주변을 잘 챙긴다고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나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견디는 중이다.
내가 세상 크게 두려워하는 일들 중 하나는 바로 멀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움받는 것이다.
사실 돌아보면 나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이라 그간 잘해왔는지 모른다. 내가 힘들 거라는 걸 잘 알아서 오히려 먼저 주변을 사랑하며 잘하고자 발악했을 지도 모른다.
그저 그렇게,
끝까지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성격의 형성은 영유아기의 영향이 지배적이라는 의견을 들었다.
형이 한창 자라갈 때, 영아인 나는 얌전하고 착해서 분유만 먹어도 잘 잤을 거라고. 그러면 부모님께선 아마 나를 재우고서 질투하는 형과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내가 3세가 되는 시점엔 쌍둥이 동생이 태어났기에 또 나는 뒷전이었을 거라고.
자라면서도 형은 형이라 사랑받았을 거고 동생들은 동생들이라 관심을 받았을 거고, 나는 늘 착한 아이였고 혼자 잘했기에 어쩌면 중간에서 오히려 관심을 받지 못했을 거라고.
사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우리 어머니께서 나에게 종종 하셨던 어머니의 기억 그것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영유아 때는 얌전히 잠을 잘 자는 아이였고 사춘기 전에도 정말 착한 아이였다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내 어릴 적 기억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전혀 없다.
상담사분께서 어머니의 장점 3가지를 물어볼 때도, 어머니와의 기억 3가지를 물어볼 때도, 시간을 한참 주시며 대답을 기다리셔도.
고작 손가락 세개, 작은 숫자 삼을 나는 다 채우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관심받지 못한 아이였음을 크게 와닿았다. 고작 핏덩이였던 나는 이미 지독하게 홀로였던 것이다.
내가 사람과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고 충격적이었다. 이를 알고서 다시 한 번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그 모습은 처참했다.
어디 가서든 의견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겨우 친해졌을 때에는 나로 인해 상대방과 멀어질까 봐, 나를 싫어할까 봐 실제로 크게 불안을 느끼며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가장 친한 동생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진 날이면 돌아갈 때면 거의 대부분 연락을 해 묻곤 한다. “혹시 내가 실수한 거 없지?”
크게 무엇을 하지 않았어도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언행을 했을까 봐, 재밌게 논 뒤조차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마음이 이렇다 보니 농담도 하고 싶고 장난도 치고 싶은데 무언갈 섣불리 하지 못한다. 그러고선 역시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구나 또 자책한다.
상담사 선생님께선 내가 우울증 관련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으시고선 놀라며 걱정하셨다. 드시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처음에 그 말을 듣고선 나를 잘 파악하디 못하셨구나 싶었는데, 이제는 점점 그 말이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내 상황은 위험하며 위태롲다는 것이 비로소 인정이 된다.
나는 하루 중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한 채 보낸다.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맑은 상태로 있는 시간이 매우 짧다. 어떤 일들을 곧잘 까먹으며 상대의 침묵은 나의 불안으로 직결된다.
그동안 십 년 언저리 그 이상의 시간을 눈물 없이 살았기에 결코 우울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울어야할 때조차 울지 못하던 감옥이었을 뿐이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던 시절, 매일같이 울기만 하던 그 시간 속 어느 날. 거울 앞에 섰다가 울던 중 내 모습을 내 눈으로 보았다.
소리 내어 우는 일, 그 쉬운 것조차 하지 못하며 이미 다 쏟아 마른 눈물을 흘리던 내 모습은. 하필 그때 또 참 작고 더러운 유리 속에 갇혀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눈을 마주하고서도 나조차도 그 어떤 위로를 하지 못했던 순간 오히려 다짐했다.
앞으로 결코 울지 않으리라.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는 사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 모습이 너무 처절했고 비참했기에 남들처럼 그저 보통의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그날 나는 내면의 창을 걸어 잠갔다.
시간이 지나 분명 힘든 상황이고 괴로운 상황인데도 울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울지 않을까 그렇게 깊게 고민했었는데.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들을 때면 전적으로 공감하고 함께 울고 힘들어하던 나였기에, 왜 지금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들을까 고민했는데. 내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살고 싶었나 보다.
이 글은 특별한 목적이 있지는 않다. 어떠한 주제가 있지도 않다. 어쩌면 그저, 나의 충격과 상황을 담담하게 정리하고 싶었으리라.
그저 또 다시 나를 미워할까봐, 멀어질까봐
나는 불안했을까.
혹은 당신들의 여름이 부러웠나.
그냥,
나도 살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