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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만세 Jul 20. 2024

아빠! 미어!

빨리 컸으면 싶기도 하고, 그만 컸으면 싶기도 하고..

우리 딸은..

정말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별로 예쁘지는 않아요. 아빠도 인물이 없고, 엄마도 예쁘다고 하기 어려운데, 애한테만 예쁘라고 하면, 그게 량심없는 사람이죠. 이건 아무리 봐도 설계단의 하자입니다.


늘 상냥한 말씨로 돌직구를 날리시는 할머니는 우리 딸을 꼭 껴안고 다음과 같은 인물평을 내리셨습니다.


“다 사람은 제 살기 마련이다. 요놈이 생긴 건 곰 같은데, 뱃속에는 여우가 한 마리 들어앉았구먼.. “


흠.. 이거는... 치.. 칭찬이지?


할머니는 손 잡으면 뾰루퉁 뿌리치는 다른 손주들과 달리, 혀 짧은 소리를 내며 할머니 품에 쏙 안기는 막내 손주를 유난히 귀여워 하셨습니다. 특히 “할머니 김치찌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처럼 누가 들어도 빤한 거짓말이지만, 할머니 요리 부심에 깨소금을 들이 붇는 잔망스러움에 높은 값을 쳐 주곤 하셨지요.


인물 좀 없어도 사근사근하고 말씨 예쁜게, 세상을 부드럽게 살아가는 데 훨씬 중요한 "고급 기술"이라고 생각하셨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놈이..

5학년이 되더니만

뭔가… 느낌이가 다릅니다.



오..악셀 좀 밟아 봤는데?



코너링 외길 인생 20년이야.



아빠는 고다꾜때 28 입었어.



카트가 이르케 무서운거야. 카트 앞에서는 혈육도 없드라.



훗. 내가 오늘을 위해서 주짓수를 배워찌..


으딜 이놈시키야. 응? 어딜 어딜? 응?


크흣! 뭘..변태가 거기서 왜 나와..


야. 문 뿌서져..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씨잘데기 없는 일들을 조잘조잘하던 녀석인데 요즘에 전화하면 첫마디가 “아. 왜? “ 로 시작하네요. 게임하고 있는데 전화하면 어떡하냐며.. 전화기가 원래 전화하는 건데, 세상에 전화기에 전화했다고 짜증을... 짜증을... 그냥..=_=^


어찌나 감정 기복이 널뛰기를 하는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아니라, 발단-위기-위기-위기-결말입니다. 고다꾜 들어가면 위기-위기-위기-위기-다음 편에 계속..이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얼마 전에 기말고사 보시는 딸래미가 “엄마가 밥을 먹으라고 해서 잠이 들었다”며 강하게 항의하는 통에, 엄마는 쫌 억울했다..는 브런치를 보고 박장대소를 하다가, 어?.. 하고 흠칫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황상 저는 분명히 묻고 따블로 들어올 게 뻔한데, 어째쓰까 싶습니다..



한 잔 해. 뭘 나라 잃은 사람 표정을 하고 그래.


야. 쥴리엣이 한국 나이로 4학년..맞지?


"니가 잘못했네. 다 큰 애한테 배 방구를 왜 해?"

“다 크긴 뭘 다 크냐. 하는 짓 보면 완전 애야.”

“야. 하는 짓 보면 우리도 애야.”

“뭐.. 그건.. 그렇지.”



공자님은 마흔에 이르러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셨고, 쉰을 찍고서는 하늘의 뜻도 깨달으셨다는데, 저는 불혹을 넘긴 지가 벌써 7~8년이나 됐는데도 라면 사러 갔다가 냉면 쎄일하면 '나 원래 냉면도 좋아하지 않나..' 하고 그렇게 맘이 흔들립니다. 불혹은 개뿔 무슨.. 철딱서니만 봐서는 우리 딸과 크게 차이나 보이지 않지요.


어디선가 읽었는데, 남자들은 고다꾜 때 잡힌 정신 연령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스무 살 먹은 놈이랑 마흔 살 먹은 놈의 차이는 배가 좀 더 나온다.. 정도 말고는 큰 변화가 없다고 해요. 반면 여자들은 평생에 걸쳐 계속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딸을 품어 줄 수 있는데, 아빠와 딸은 어느 순간 정신연령이 역전된다고 하네요. 중학교 때쯤부터 아빠랑 싸우다가 대학교 졸업할 때 쯤되면 다시 아빠를 찾는다고.


내년이면 6학년. 후년이면 중학생인데..

아..

시험 볼 때는 밥 주지 말아야지.

계란 후라이에다가

스팸도 얇게 구워서 내가 다 먹을테다..T_T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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