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들려주는 사자성어 이야기
술(酒)을 말(斗)로 마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不辭). 술 잘 마시는 게 뭐 자랑할 일인가 싶지만, 원래 의미는 기개가 넘치는 장부라는 의미였습니다. 옛날에는 '잘 먹는다'가 '남자답다'를 나타내기도 했구요. 장군 염파가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한 말의 밥을 먹고, 열 근의 고기를 먹었다는 것처럼 말이죠.
항우는 홍문에서 연회를 열고 유방을 초대했습니다. 유력한 경쟁자를 미리 죽이려는 계략입니다. 유방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번쾌는 무턱대고 연회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번쾌에게 호기심이 생긴 항우는 술 한 말을 내리며 마실 수 있겠는지 물었고, 번쾌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깟 술이 두렵겠느냐'며 단숨에 마셔버렸습니다. 이렇게 두주불사의 원래 의미는 항우 앞에서도 당당한 번쾌의 기개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에헴. 잘난 척을 위한 한걸음 더..
항우의 책사 범증은 연회를 벌여 유방을 불러들인 뒤, 기회를 보아 암살하자는 계책을 냅니다. 연회가 한창일 무렵, 초나라 장수가 칼춤을 추며 유방에게 접근하자, 범증의 계획을 눈치챈 장량은 번쾌를 불러 들였습니다. 번쾌는 다급한 마음에 칼과 방패를 든 채 연회장으로 뛰어들었고, 항우는 크게 노해 번쾌를 꾸짖었습니다. 주군들의 연회에 칼과 방패를 들고 뛰어든다는 건, 그 자체로 목이 날아갈 일입니다.
그러나 번쾌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고, 그 당당한 태도에 호기심이 생긴 항우는 번쾌에게 술과 고기를 내렸습니다. 번쾌가 순식간에 상을 비우자, 항우는 술 한 말 더 마셔 보겠냐며 번쾌를 떠 봅니다. 번쾌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찌 술 한 말을 두려워하겠냐‘며 그 자리에서 술 한 통을 다 마시고는, 어째서 유방을 죽이려 하는지 항우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제아무리 번쾌라 해도, 항우의 진지에서 항우를 칠 방법은 없습니다. 칼을 들고 연회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자신은 죽더라도 유방만은 살려서 빼내겠다는 뜻입니다. 항우 역시 그 기개를 높이 쳐준 것이구요. 한편, 어수선한 틈을 타 연회장을 빠져나온 유방은 곧장 자신의 진지로 도망쳐 버렸고, 일이 틀어진 것을 깨달은 범증은 크게 한탄했습니다.
불과 5년 뒤, 다 잡은 고기를 놓아 준 항우는 해하에서 크게 패하며 천하를 유방에게 넘겨주고 역사 저 편으로 사라집니다.
홍문지연 | 鴻門之宴 : 홍문에서 벌어진 연회. 죽다 살아났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말 | 斗 : 곡식의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요즘 기준으로는 대략 18리터 정도입니다. 생수병 9개.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