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콩콩

나의 유년에게 전하는 안부

by 불은돼지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집이라고 가던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이사라기 보다는 오래 머무는 것으로 여겨졌다. 마당도 넓고 앞마당 뒷마당 감나무, 대추나무, 호두나무가 있어 먹을 것도 많고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서 난 조금 어리광을 피울 여지가 있겠다도 싶었다.

그렇게 떠나온 대구 집 대문 위의 화분 같은 곳에는 스카이 콩콩이 있었다. 누나들과 서로 타겠다고 싸워서 인지 어린 동생이 타겠다고 보채서 그랬는지 분명 애비는 징벌적으로 거기에 올려놓았다고 짐작한다. 항상 내 맘속에 그 스카이 콩콩을 가져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숫기 없는 나는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다만 살던 집이니 곧 다시 갈 거라는 당연한 믿음이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 내가 쓰던 사랑채에 우리 가족은 같이 지내게 되었고 애비는 저녁이면 술이 취해 있는 날들이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언쟁을 하는 날이 좀 많아졌고 골목길에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라는 노래가 들리면 나는 숨을 죽이고 어디론가 숨고 싶어 졌다. 그런 순간은 말할 수 없이 숨막혔다. 좋은 날도 많았지만 그런 기억들이 쉬이 불이 붙곤 했다. 그런 날들이 미안한 애비는 가끔 대구를 다녀올 때마다 새로 나온 부루마블이니 B.B탄이 들어가는 권총이니 하는 것들을 사 왔다. 새로운 장난감도 좋았지만 청포도 덩굴이 지나가던 대문 위의 스카이 콩콩을 난 잊지 못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어린이날에 애비는 우리 형제만 데리고 달성공원엘 갔다. 전국에서 키가 제일 크다는 수위 아저씨가 있었고 솜사탕을 들고 먹을걸 안 주면 침을 뱉던 침팬지와 이런저런 동물을 보고 나서 난 당연히 봉덕동 집으로 돌아갈 것을 의심치 않았다. 뒷집 살던 명진이와 수양버들 나무가 있는 공터에서 태권브이를 그려놓고 철이 놀이를 하고 스카이 콩콩을 내려서 같이 놀려고 했다. 달성공원에서 피곤했던지 택시를 타고는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대구역이었다. 그 사이 나는 다시 할아버지 집이 나의 집이 되었다는 것과 나는 이제 대구 집에 갈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서야 천천히 애비에게 말했다.


'집에 가야 되는데. 스카이 콩콩 내리러'

'지금은 차 시간 때문에 못 가고 다음에 가'


난 시골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울다가 혼이 났다. 난 영영 저 스카이 콩콩을 내리지 못할 것 같았다. 왠지 모르지만 그게 그렇게 참을 수 없었다. 말도 없고 싫다 좋다 표현도 별로 없던 나는 그냥 울 수밖에 없었다.

내 스카이 콩콩


그러고 스카이 콩콩 따윈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던 어느 날 안채에서 큰 소리가 많이 오래 났고 그 다다음날쯤 할아버지 할머니는 대구 집으로 가셨다. 우리 가족은 안채로 짐을 옮겼고 누나들은 방을 하나씩 차지했고 난 동생과 함께 엄마 아빠와 같이 잤다.

방학 때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꼭 가야 했고 갈 때마다 봉덕동 집에 가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집 상태가 더 안 좋은 대명동 집에 항상 계셨다. 조금 좋은 봉덕동 집은 다른 누군가에게 세를 주었다고 갈 수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갈 때마다 그 옛 기억을 더듬어 애들과 놀던 골목길이며 영선초등학교 앞 장난감 가게며 이천동 언덕바지 길을 걸어 다녔고 봉덕동 집 앞에서 대문을 한참 쳐다 보기도 했다.


그러고 2년이 더 지나서 대구 집을 빨간 벽돌 2층 집으로 새로 짓는다고 듣게 되었다. 아~ 내 스카이 콩콩, 난 부탁하고 싶었다. 그걸 내려주세요. 이제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굉장히 단호했다.


'오래되서 다 삭아서 없어졌을 거야'


애비는 농사를 열심히 지었지만 또 술도 열심히 마셨다. 우리는 때때로 광이나 장독대에 숨어 있기도 했고 중 고등학생이 된 누나들은 야간자습에서 미쳐 돌아오지 못했다고 말하던 날이 조금씩 늘어 갔다.

대문에는 청년회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나무 현판이 걸려 있다가 빛이 바래져 갔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제 명절에만 찾아오시게 되었다.


또 그즈음 대구 집을 새로 짓는다고 하고 만 1년쯤 난 빨간 벽돌 2층 집으로 바뀐 봉덕동 집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뵙게 되었다. 대문 위에 청포도 덩굴도 마당에 있던 화단도 라일락 나무도 다 없어지고 시멘트가 깔린 마당이라고 할 수 없는 공간이 생겼고 현관문을 열자 옹이가 인상적인 나무 타일로 마감된 테레비에서 많이 보던 집이 되어 있었다. 2층엔 세를 놓을 것이고 1층에 있던 방 2개는 따로 연탄보일러를 놔서 세를 줄 수 있다고 하셨다. 연탄 값을 아끼신다고 우리는 안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그 집에서 첫 밤을 보냈다. 그렇게 봉덕동 집의 탄생과 함께 나의 스카이 콩콩은 기억에서 사라졌었다.


결혼을 하고 봉덕 집에서 분가를 했고 한참이 지나도 별에서 아이가 오지 않던 시절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스카이 콩콩을 타고 있었다. 내가 알던 스카이 콩콩보다 스프링도 크고 이중 삼중으로 발판 같은 게 달려 있었다. 그래 저건 내 스카이 콩콩이 아니지. 하지만 내 스카이 콩콩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이별한 적이 없는 스카이콩콩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늘 거기 있을 것만 같던 것들은 심지어 기억조차도 잊혀진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이미지는 박제되어 있고 흐릿한 사진첩을 꺼내 듯 생각이 날 뿐이다. 하얀 몸통이었던 그 스카이 콩콩의 최후를 짐작은 하지만 이별하지 않은 상태로 두고 싶다. 마무리를 짓는 것이 최선이 아닐 때도 있다. 그 어떤 미망 같은 것으로 태연히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그 스카이 콩콩의 생명력에게 또한 이토록 길고 긴 이별에게 안부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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