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 불의의 습격을 당하고 대한민국 절반을 하루 만에 두 번을 가로지르고 난 다음 본부장 새끼가 나한테 한 말이다. 소원이 있다면 첫 번째는 남북통일이고 그 다음이 이 새끼 신장결석으로 목걸이를 만드는 거다. 살면서 사람에게 이토록 오랜 시간 이 정도 적의를 불살라 보는 것도 처음이다. 누군가에게는 선일수도 참일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악인게 분명하다. 사축(회사의 가축)에게 하듯 출장을 호사라고 참칭할 정도니. 덕분에 맘에 드는 인트로가 됐으니 이건 덕을 봤다고 해야 되나.
호사는 이렇게 시작 되었다. 정읍 출장 건이 생겼다. 미팅 자료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되었고 가서 얼굴만 비추고 명함만 주고받고 돌아오면 되는 일이였다. 또 미팅 시간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후1시였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 알맞은 농담거리를 고민하지도, 또 프로젝트와 관련된 간보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들이에 가까운 출장 이였다. 그래도 첫 미팅이라 경험도 몸무게도 중후한 내가 가야 하는 자리 였다. 그걸 또 본부장은 전체회의에서 생색을 내며 놀부 제비다리 부러뜨리는 소릴 했다. 짜증난 혓바닥이 튀어나오자 입술이 발을 걸었다. 잘 참았다. KTX도 마침 개통해서 오며 가며 실컷 잠을 자거나 미뤄 뒀던 책을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단풍철에 내장산이다. 여름 바다, 겨울 스키장, 가을 단풍 같이 괄호 안의 여가를 누려보는 느낌이다. 간만에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었다. 얼마만의 정시 퇴근인가?.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비싸서 선뜻 사기가 어려웠던 티셔츠도 마침 세일을 해서 샀다. 이 출장은 나를 위한 날 같았다. 맘에 들던 새 옷을 입고 간 미팅은 짧고 굵게 잘 끝났다. 훤한 낮이라 술 먹자고 질척일 여지도 없었다. 헤어지는 뒤통수에 나답지 않게 90도 인사를 박고 돌아서서는 정읍 쌍화를 마시며 여유롭게 책을 봤다. 역 앞 순대국밥 집에서 낮술을 들이키고 오른 KTX는 새 차 시트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어서 금방 잠이 솔솔 왔다.
다마는 말 그대로 다수였다. 신체적인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한 명이였지만 나의 이 거룩한 출장을 파괴한 사람은 3명이 더 있었다. KTX 가운데 4인석에서 내장산 단풍놀이를 다녀온 것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두 커플은 맥주 캔을 연신 부딪치며 예능과 콘서트를 왔다 갔다 했다. 익산을 지날 무렵 이어폰 볼륨도 무시하고 뚫고 들어왔다. 눈을 뜨니 이미 주변에서 큼큼 거리는 사람 쏘아 보는 사람 고개 돌리고 애써 무시는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기 죄송한데요. 좀 조용히 해주실래요?’ 라고 했다. 알겠다는 대답을 하자마자 꺼억 거리면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2시간 같은 5분이 지나갔다. ‘보소! 뭐 이래 시끄러운 교? 기차 전세 냈어예? 관광뻐스도 아이고 뭔교!!’
떠봐야 별것 없는 눈을 부라리며 이럴 때 유용한 경상도 어를 구사했다. 서울말을 배우는 중이라 자제하고 있었지만 내 소중한 출장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리곤 한 아저씨가 화살처럼 날아오는 게 보였다. 술이 제법 취한 아저씨는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였고 두어 번 내미는 주먹을 앉은 자리에서 피하고 나니 내 멱살을 잡았다. 통로 쪽에 앉은 나는 옆자리에 피해를 줄까봐 벌떡 일어나서 아저씨를 밀쳐냈고 그 사이 그 주변인들까지 와서 나를 둘러싸고 내 뱉은 욕으로 이미 불로장생하게 될 터였다. 멱살 잡힌 자리가 좀 쓰라렸고 흘렸다고 생각한 주먹은 얼굴만 비켜 갔을 뿐 내 큰머리는 피하지 못해서 욱신거렸다. 나름 내성적인 성격에 온 객차의 주목을 받으니 부끄러워서 밖으로 나왔다.
사법고시 공부 2년 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신고를 했고 역무원이 내 자리를 다른 객차로 옮기고 철도 공안이 대전역에서 탔다. 간단한 구두 조사를 하고 천안역에서 내려 대전 공안본부로 가서 조서를 써야 했다. 멀리서 그 아저씨 일행의 활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법적으로 공공장소 주취소란 혐의를 받게 될 그 아저씨는 열차 밑으로 들어 갈려다 실패하고 손잡이를 잡고 버티고를 반복하다 하향 열차에 구겨지듯 실렸다. 각자 조서를 쓰는 동안에도 아저씨는 악에 받힌 ‘미안하다’를 외쳤고 난 공안에게 ‘다구리’ 당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위해 심신이 미약해진 상태니 다른 곳에 가서 조사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다시 열차를 타고 광명역에 도착하니 밤 12시였다. 하필이면 그 ‘다마’분들이 플랫폼에 보였다. 낙담하며 서 있는 모습에서 그분들 밥벌이의 고됨이 언뜻 보였다. 나라 잃은 듯한 표정과 말린 어깨로 평소에도 감정의 우물에 뚜레박 드나들 듯 했나보다. 나도 익숙한 그런 감정. 심지어 코 앞에 있는 나의 존재도 알아채지도 못했다. 고되고 고된 일상에서 간만에 나들이가 너무 신나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었다. 술이 깬탓인지 단풍놀이의 흥분이 가신 탓인지 얼굴 하나 하나가 내가 보던 그 생활인의 얼굴이였다. 그제야 난 좀 참았어야 했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복수는 차갑게 식혀 먹는 음식이라고 아까의 분노를 생각하며 올리며 보란 듯이 앞을 지나쳐 왔다. 집에 도착하니 내 신상 티셔츠 목이 늘어나 있는 걸 그대가 발견했다. 간만에 맘에 드는 셔츠였었다. 여름신상이라 비싸서 사달라고 말도 꺼내지 못했던 셔츠가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내 기분처럼, 내 출장처럼 늘어져 있었다.
잊어 먹을 때 쯤 수원지방검찰청에서 전화가 왔고 필요하면 출두를 요청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진단서가 있으면 제출하라고 하는데 난 옷이 상했는데 이건 어떻게 안 되냐고 소심하게 물어봤다. 뜨악해 하는 ‘네? “라는 질문 같은 답을 받았다. 합의가 없으면 가중처벌이 된다고 해서 티셔츠의 복수를 위해 거절했다. 친구 새끼는 합의금이면 티셔츠 따위 박스로 살수도 있는데 라며 “자본주의적으로 살아야지~”라고 한다.
그 티셔츠는 그날 이후로 버리지도 입지도 못한 채로 옷장 구석에 잘 개켜져 있다. 볼 때마다 어제 일처럼 씩씩 거리다가 참았어야 했나를 되뇌인다. 은혜는 안 갚아도 원수는 갚는 세상에 내 마음 따위는 왜 이렇게 아직도 널을 뛰고 있는지. 착한 건지 못 되먹은 건지 솔직하지 못한 마음 탓을 해본다. 늦둥이라던 위층 꼬맹이의 재롱잔치급 발소리를 흐뭇하게 참아내며, 이사 온지 이틀 만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간 아랫 층 계단 흡연 쟁이 아저씨를 방법 할 생각을 하며.
오랜 시간동안 술자리 보조 배터리 역할을 했던 이 이야기는 오늘의 숙제로 그만 방전 시켜야겠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마음 단단해 지는 방법은 못 찾겠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