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 즐거움
남다른 술통을 물려 받았으니 마셔야할 운명 이였을 거다. 술만 마시면 주량을 자랑 하는 집안에서 태어 났고 자랑은 하지 않지만 탁월한 주량을 가진 외갓집 어른들을 보며 내린 결론이다.
그래도 너무 일찍? 배우기는 했다. 고등학교때 부터 토요일은 의례 애들이랑 술을 마시고 외박을 했다.
이런 저런 사건 사고와 붙임을 겪으며 자칭 타칭 상타 치던 나의 주량으로 이제 남들과 딜교환을 하지 않는다. 술 마시다 코마에 빠진 인간들의 사진을 찍어 놓으니 내가 무슨 연쇄 알콜마의 트로피를 모으는 기분도 들었다. 저 인간들 하나 같이 술취한 나의 주사를 오래도록 받아 주었다. 3~4시 까지는 기본이였으나 늙음은 나에게 비교적 짧은 음주 시간을 주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나의 재즈의 역사를 알려 준다며 음악을 듣다가 잠 들었고, 어떤 놈은 철학의 역사를, 또 어떤놈은 양자 역학을........
그렇게 알량한 지식을 자랑 하기도 하고 공장 이야기도 하고 옛날 이야기도 하고.
재미 있자고 먹은 술이 꽤나 부작용이 많았다. 어울려서 마시면 적당히를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아직도 적당히 마시는 법이 잘 없다. 마시면 더 마실 수 없을 때까지 마시고 속에 담겨 있는 말을 꺼내고 다음날 후회를 하고 또 그걸 변명 해보려고 다른 자리를 만들고.......
그러다 찾아낸 방법이 혼자 바에 가는 것이였다. 바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편이다.
혼자 마시는 것의 즐거움을 가지긴 위해서는 AT 필드가 필요하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뭘 쓰거나 음악에 손가락을 톡톡 거려도 머쓱해 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이야 가게마다 1인석이 생길 정도지만 2000년 초반만 해도 바가 있는 술집에서도 바에 앉는 사람은 이상하게 취급 받았다. 혼자 영화보러 갔다오면 "왜?"라는 대답 뒤에는 '너 친구없어?'라는 말이 숨어 있던 시절이니까. 무언가를 같이 해야 한다는 관념이 매우 크던 시절이였다. 그 틈을 비집고 첩보영화 찍듯 혼자 살금살금 하다 보니 생긴 스킬이였다. 그러다 술친구가 생기기도 했다. 대구 '레드 제플린' 시절에는 매출 기여 순위로 내가 상무였고 영남대에서 영어 강사 하던 페르난도 아저씨가 전무, 합기도 사범하던 친구가 부장이라며 어울려 마셨다.
U2 내한 공연이 있었던 날 집에 가기는 애매한 차시간에 새벽 출근하는 자형을 일러 술약속을 잡았다. 그 사이 30분 틈을 비집고 제임슨 한병을 시키고 안주로 맥주를 마셨다. 괜찮은 재즈바였고 낯선 손님의 익숙한 바 착석에 살짝 의아해 하는 크루는 신청곡 쪽지를 머뭇거리며 두고 갔고 핸드폰을 뒤져 생각 나지 않는 스펠링의 맞춰 3곡 신청하니 그 크루가 주방에 있던 사장에게 좀 나와 봐야 될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아~ 이 집 사장은 재즈를 좀 아는 모냥이네' 라고 생각했다. 범계역에 있던 진공관 스피커가 있던 재즈바 이야기를 했고 난 이제 이동네를 떠났고 누나 집에 온 길에 옛 생각나서 재즈바를 찾다 오게 되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훗날이 있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로 남은 킵을 마시지도 못하고 2년이 넘었다.
가자 주류에 가면 몰트 위스키를 7만원대에 살 수 있다. 그 수많던 생일 선물 중 한번은 그대에게 이걸 한병 사달라고 했었다. 시가랑 같이 하면 기쁨 두배이지만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이 흡연이 허락된 장소 밖에 없다. 후배 집이라던지.......
묵호는 일년에 한번씩 가는 좋은 혼술 장소가 되었다. 저렇게 일몰을 보면서 한잔 하다가 해가 지면 돌아 앉아서 밤 바다를 보면서 술을 마실 수 있다. 참 넉넉하게 취해서 잤고 꽤나 힘든 숙취에 일어났다.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친구 새끼가 가끔 와인을 가져다 준다. 마실 때 편한 술이지만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음악을 틀거나 영화를 보면서 천천히 마시면 견딜만 하다. 이 새끼는 나랑 취향이 비슷한 편이여서 가져오는 와인마다 맛이 있는 편이다. 사실 1만원 짜리 와인 덜렁 담던 내가 뭘 알겠냐만은 나중에 전해들은 와인 가격에 부채가 생기긴 했다. 없는 살림이지만 소고기라도 좀 끊어 줘야 된다.
혼술 할때는 안주라고는 별게 없다. 도시락이나 8천원 짜리 냉동 닭발이면 준비 끝. 술이 취할 수록 영화는 재밌었고 드니 빌뇌브를 좋아하게 되었다. 혼술의 장점은 말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다. 나란 인간은 어쩜 그리 주저리 주저리 말을 많이 하는지. 잘난 척도 해야 되고, 내 속에 있는 것도 더럽지만 꺼내서 보여 주기도 하고.
국립공원 코스내에선 음주, 흡연이 금지 되어 있지만 난 고민 하던 끝에 다 마신 생수병과 소주팩을 들고 화장실에 가서 옮겨 담았다. 엄청 눈치를 보며 조금씩 마시면 소주로 오해 살까봐 꿀걱 꿀걱 마셨다. 입산 금지가 풀리는 5월에 다시 지리산 종주를 가려고 블로그를 찾아 보니 '생수제조'라며 불리고 있었다.
이제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되었다. 대신 조금씩 개미 기어가듯 글을 써 본다.
요즘은 진도가 거의 나가지 않으니 묵호를 한번 가야 겠다. 양념맛 때문에 도무지 무슨 생선인지 맛 모르는 조림이나 물회 한 그릇을 시켜 놓고 청승을 떨다 해질무렵 숙소에 노을 걸어 두고 밤바다 받쳐 놓고 걱정 따위 실실 웃어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