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리조트에서 일하다 보니 평일에 쉬는 날이 많다. 월화수목금금금하던 광고대행사 생활을 그만 두고 내려와서는 퇴근하는 것에도 감사했다. 함께 하는 저녁은 눈깔 사탕처럼 달콤했지만 금방 녹아 사라졌고 조금 더 긴 시간을 원했다. 공무원인 그대와는 항상 쉬는 날이 엇갈려, 견우, 직녀처럼 1년에 한번 정도 짧은 휴가를 함께 했다. 특히나 여름 휴가철과 겨울철에는 이것 저것 눈치를 보느라 주말을 피해서 휴일을 잡아야 했다.
휴무 전날은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러 갔다. 다음날 늦잠도 너무 달콤하지만 생명 연장에는 눈치가 꼭 필요하다. 늘 집안일과 육아를 책임지는 그대에게 얄팍한 눈치보다는 부채감이 있었다. 어렵사리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여타의 남편과 같은 취급을 받기도 싫고 그런 마음에게 내 자리를 주기도 싫었다.
그래서 퇴근 전에 밥상이라도 차려 놓자고 맘 먹었다. 현관에서 아들을 채근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일어나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한다. 철 들지 않는 남편에게 거의 불만 없는 그대는 '오늘 재밌게 놀아' 라며 아들과 같이 출근을 한다. 남자라는 동물의 특성상 그 말한마디에 맘이 편해 진다. 그래도 사람 새끼면 마냥 편하면 안된다. 이게 나의 친구들에게 돌팔매질 당하는 부분인데..... 이 새끼들아 사랑은 주문이 아니라 배달이야. 잘 생각해봐.
하루는 밥을 해놨더니 '오~~ 남이 차려주는 밥상. 퇴근하니까 바로 밥상 받으니까 너무 좋은데!!'를 듣자마자 쉬는 날엔 밥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부채감보다는 너무 해맑게 좋아하니까.
웃으면서 먹는데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열심히도 했지만 실패도 많았다. 입이 유독 짧은 탓이다. 매생이 굴국은 'XX년 머리털 같아'라며 맛 보기를 꺼려 했고 오곡 리조토는 '지옥의 용암'이라고 했다. 태어나길 육식동물이라 고기류는 구워도 물에 빠뜨려도 잘 먹는다. 나랑 입맛이 사맛디 아니해서 꽤나 애를 먹는다. 메뉴 돌려막기도 하루 이틀이지, 매너리즘에 빠져 다른걸 시도해 보려해도 그대의 입맛은 여전히 고기서 고기다. 아들은 더 좁은 입맛이라 새로운걸 먹여 보는 걸 포기 했다. 아직도 잘 먹는 것과 먹여 보고 싶은 것의 사이에 고민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요리 음식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다. 앱이나 블로그만 봐도 너무 잘 나와 있기 때문에 신선한 재료 수급이 최대한의 관건이다.
저녁을 시작하고나서 루틴이 바뀌었다. 숙취나 밤샘 게임의 수면 부족은 없어졌다. 대신 현관문이 닫히자 마자 소중한 휴일을 보내기 시작한다. 일단 컴퓨터를 켜고 앉는다. 쪼렙들이 많아진 오전 서버는 상쾌하다. 금새 시간은 10시 쯤이 되면 운동 가방을 주섬 주섬 챙긴다. 여주국민체육센터의 1회 이용은 3천원이다. 두시간이 채 안되게 쇠질을 한다. 체육관 옆 도서관에서 책을 둘러본다. 보고 싶은데 없는 책은 앱으로 바로 산다. 집에 돌아 오는 길에 커피를 한잔한다. 그러고는 장을 보러 간다.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고 나서 운동 가방에 넣으면 큰 운동 가방을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메뉴는 체지방과 근성장 어디 쯤에서 고민을 하다가 항상 라면이나 불닭 볶음면 어디쯤으로 기울거나 10분 거리에 있는 할머님이 혼자 하시는 떡볶이를 사러 간다. 튀김과 순대는 한 가족이다. 고민하지 마시라.
2시 쯤이 되어서는 음악을 틀어 놓거나 유튜브를 틀어 놓고 밥을 하기 시작한다. 국물류는 한번 끓여 놓고 밑반찬은 반찬통에 담아 놓고 쌀은 씻어서 예약을 눌러 놓는다. 잘 불린 현미밥을 좋아해서 기본 2시간은 불려야 한다. 간간히 메뉴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다. 항상 '맛있겠다 ^^' 가 오지만 잘 안먹을때도 있다. 그리고 4시간 되면 복싱 체육관으로 간다. 쇠질을 했으니 유산소를 해야지. 힘든 것을 참고 계속 했더니 체력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샌드백이 잘 맞을 때는 그 소리와 주먹의 느낌은 정말 짜릿 하다. 그냥 내가 알리고 마이크 타이슨이다. 스파링 하면 맨날 입안이 다 터져서 내려오지만.
그러고 그대가 퇴근을 할 때 즘 돌아가 해놓은 음식을 덥히고 상을 차리고 함께 식사를 한다. 이제 부터는 혼자가 아니다.
여기까지가 평일에 쉬는 유부남의 나쁘지 않은 혼자 놀기이다. 좀 과할 정도로 운동을 하지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것보다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다치지 않게 구석 구석 눈치를 봐가며 쉬고 있는 근육이 있으면 '잘 걸렸다. 요놈' 해가며. 저녁상 차리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맛있을 때도 잘 안먹을 때도 있지만 둘의 좁은 입맛을 조금씩 넓혀가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다 먹은 상을 치우고 설겆이를 하고 난 다음의 상쾌함이 참 좋다. 먹고 마시고 일상에서 우리는 사랑한다. 더 행복하고 더 좋아하는 것은 어렵다. '나쁘지 않다'에 감사 할 일이다.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