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보고
사람 일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대충 먹고 자고 일하는 누구나 겪는 루틴 사이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전혀 기대 하지 않은 사건으로 일생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계획 없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갑자기 강릉을 간다던가 산엘 간다던가 하는 일 말고는. 평범한 휴일의 루틴에 크랙을 낸건 영화였다. 체육관을 가려고 가방을 메다 말고 이 영화를 기억해 냈다. 헤어질 결심이라..... 나로서는 상상도 해보기 힘든 워딩이다. 비릿한 박찬욱 감독 영화라 망설여 졌다. 저 깊은 장기 속에 숨겨놓은 본성을 긁어 내는 영화, 보고 나면 많은 걸 얻지만 뒷맛이 영 씁쓸하다. 세련된 이창동 감독이랄까? 문법은 다르지만 갈쿠리로 오장을 휘젓는 감독.
가보자. 극장에.
영화는 너무 좋았다. 파헤치기를 좋아하는 내 성향에도 이런 저런 상징도 클리셰도 많았다. 그리고 간만에 굉장히 집중해서 영화를 봤다.오래 두고 보는 책이 있듯이 이 영화도 그런 매력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끌리는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며 굳이 남녀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 또한 자의, 타의로 인해 생난 인간관계의 콜드 케이스들이 생각났다.
이제는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헤어졌는지 알수도 없는 이름들. 후회조차 잊어 버린 그런 사람들.
잊어야만 현재를 살 수 있다는 말에 수긍할 만큼 단 하나의 후회도 기억 되지 않는 나의 콜드 케이스들. 사실 망각에 가깝겠다. 내가 받은 것이 상처인지도 모를 만큼의 세월이 지나고 어쩌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잠깐 가진 적도 있었던것 같은.
어느 특정 장소에 가면 난 가끔 기억을 떠올린다. 과거가 소환되고 풍경처럼 사람도 소환되어 재현된다.
그럴때마다 작별인사를 전해준다. 그때 미쳐 하지 못했던지 아니면 내가 헤어지지 못한 건지. 우리가 어떠했는지 무얼 했었는지를 떠올리며 누구한테도 특별할리 없는 길거리에서 혹은 문앞에서 혹은 식당에서 난 추억으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래서인지 난 영화의 결론이 슬프거나 안타깝지 않았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기억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망각한 것은 다시 기억된다. 소멸만이 완전한 망각이다.
만난지 9724일째 한 번의 연애와 한번의 결혼, 그리고 하나의 아들. 소멸이 주는 불안에서 오늘의 함께 함을 사랑하겠다. 헤어질 결심이 언제 찾아 올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아보겠다. 혹은 급작스런 이별 통보가 와도 추억을 보듬으며 살아가겠다. 그래서 좋았던 우리를 생각하며 비통과 회한 보다 기꺼이 즐거움으로 나의 헤어질 결심을 맞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