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을 바랍니다

'작별인사' 독후감_김영하 저

by 불은돼지

* 소설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Prologue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로고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은 자주 그 의미가 바뀝니다. 텍스트로 남겨도 그 주체가 없으면 오리지널티를 잃어버리고

쉽게 바뀌고는 합니다. 때로는 내 입을 거쳐 나온 말은 바로 앞에 앉은 상대에게도 잘못 전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오해들을 수정, 정정하기도 합니다. 사과라던가 아니면 화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필멸의 과정에 있는 것일 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죽음에 대해 가진 의지처럼 보입니다. 죽음은 모든 이에게 평등한 것이지만 불평등한 결말로 전해 지기 마련이기 쉽습니다. 누군가의 최후에 대 이런저런 소회들에게 조차 '작별인사'를 고하고 싶은 듯했습니다. 알 수 없지만 죽음은 아직까지는 기억조차 망각되는 그런 소멸이니까요.


몇 장 읽지 않은 지점에서 하필이면 직박구리를 묻어주는데서 픽 웃었습니다.

조금은 불경스러울 수도 있는 그런 폴더가 떠올랐지만 제법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그것 또한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기억에 대한 작가의 농담 같은 것은 아닐까? 혹은 직박구리라는 새에 대해 정확히 썼지만 저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기도 한 어떤 맥거핀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별인사는 나의 기억에 대해 보내는 '영원한 안녕' 일수도 있겠습니다.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의 의견이니까요.


죽을 것이냐? 영원할 것이냐?

이 질문은 사실 살아가는 동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는 물음이지 실제로 선택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비슷하면서도 다를 수 있는 것은 유일함을 획득하는 탄생 그 자체에 있고 또한 그것이 '영원히 사라진다'라는 쓸쓸하면서 아직도 누구도 알 수 없는 죽음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SF라는 장르를 가져와서 영생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책이 쉽사리 놓아지지도 않는 이유는 SF 장르와 오즈의 마법사 같은 로드 무비 같은 설정 덕분일 겁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A.I'의 주인공이 오즈의 마법사를 찾은 후에 집으로 돌아온 후의 일까지 그린 것 때문 일 겁니다. 다만 죽음에 대한 작가의 결기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죽은 자는 죽음에 대해 간증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죽음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도그마가 참 어울리지만 종교라는 설정으로는 좋은 전도의 구실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SF라는 장르를 덮어 씌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산자가 나의 죽음을 말하는 것은 의식의 변형과 왜곡 또는 해석의 일환이지 그것이 '나'임을 말해주는 것은 될 수 없습니다. 오리지널티, 아이덴티티는 제가 어느 누군가에게 로고스를 전할 수 있을 때에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저 죽은 자에게 전하는 작별 인사가 '안녕' 하길 바랍니다.


Epilouge

'작별인사'란 제목 덕분에 제법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연하고 외따롭지만 실상 조금씩 헤어지면서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쩌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나의 유년에게 안녕을 고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여태까지 살면서 '말'을 건네준 친구들에게 안녕함을 물어봅니다. 친구를 사귀는데도 유지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은 저의 친구로 지내기도 만만치 않을 건데, 그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빈정거리고 까칠하게 말하고 술 마시고 실수를 해도 별로 미안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덕분에 조금씩 나은 인간이 되고 있다고 하면 위안이 될까요?

그래도 아직 살아서 이렇게 너희들의 '안녕'을 바랍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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