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1
사랑채에 '찬밥 처럼 담겨져 있었다'. 이른 추위가 몰아치던 그해 가을에 유독 감기가 심했고 몇일을 앓아 누워 있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아픈 것은 태어나고는 처음이였다. 도저히 아플리가 없던 나여서 고열과 어지러움이 낯설었고 그 틈을 타서 반을 대표해 병문안이라며 반장이 왔다 간 것이 더욱 낯설었다. 담임이 가보라고 시킨 티를 듬뿍 내며 초등학교에서 배웠을 법한 병문안 대사만을 내 뱉고는 엄마가 가져다준 음료와 과자 접시를 말끔히 비우고는 야간 자습 시작이 얼마 안남았다며 홀가분해 보이는 어깨로 방을 나갔다. 열은 내렸지만 어지러움은 더해져서 헛구역질을 했고 그럴때 마다 이제는 보랏빛이 된 갈비뼈 부근이 쑤셨다. 그리고 미열에 잠이 들었고 많이 늦은 밤에 영이 찾아 왔다. 검은 봉지안에 소주 두병을 꺼내 놓고는 누워서 일어나느라 끙끙대는 나를 채근해서는 부엌에서 안주를 가져오라며 중얼 거렸다.
'좀 마셔봐. 잠도 잘오고 아픈데도 괜찮아 질거야'
'개새끼..... 안주라도 좀 사오던가'
'한병씩 나눠 먹어야 되는데 안주 살 돈이 없었어.'
그러고는 이불을 둘러싸고 앉은 나의 잔만 채워 주는 걸 일 삼았다. 취기가 오르지도 않았고 말도 없이 한병씩 비우고는 빈병을 검은 봉지에 챙겨 넣고 늦은 숙제 다 한것 처럼 후다닥 떠났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떳을 무렵에 학교를 갔다.
나를 다구리 놨던 놈들은 나랑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다시 말을 섞으면 분명 주먹질로 갈것이 두려웠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눈을 피했다. 고통이 사라지면서 겁도 같이 없어진것 같은 느낌이였다. 맞는건 무섭지 않았지만 한대라도 때리고 싶었다. 오래 누워 있어서 그런지 몸이 천근 만근인게 걱정 되긴 했지만 이렇게 쉽게 눈을 피할 줄을 몰랐다. 하긴 몸 상태가 정상이여도 종주먹을 쥐고 욕하는게 전부였겠지만.
영은 나의 등교와 그 놈들과의 대치에 놀라워 하며 몸 걱정을 했다. 어른의 위로를 흉내냈지만 효과는 있었다. 몇일을 혼자 누워 있었는지.
'쟤들 왜 그래?'
'어. 현이 다 불러서 조졌데'
'현이가? 언제 왔다 갔어?'
'어제 저녁에'
'너도 갔었냐?'
'응 잠깐'
'왜 말안했어?'
'너 알면 그 길로 거기 갈거 같아서'
'됐고, 멀쩡한데?'
'응. 이번에 걸리면 퇴학이라고 티나는데는 안 때리고'
의붓아버지를 피해 김천으로 학교를 간 현은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수업 내내 잠만 자고도 현은 전교 석차에 열 손가락에 들면서 고등학교를 갔고 나는 떨어져서 집 근처 학교로 진학했다. 그러고는 학교에 가는 둥 마는 둥 하며 족발집에서 배달을 하며 생활비를 충당했고 소위 일진들과 어울려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가끔 일찍 버스가 끊어지면 내가 데려다 주곤 했다. 대문 쪽으로 난 사랑채 쪽문 틈에 입술을 집어 넣듯 나를 부르곤 했다. 그런 이유 등등으로 애들에게 당했다고 뜬금없이 정의의 사도 노릇을 했겠지만 내가 더 쪼다가 된 셈이였다.
점심시간엔 교무실에 불려 갔다. 왜 말도 없이 왔냐? 무턱대고 수업시간 중에 들어오는 건 어디 예절이냐? 몸이 안좋은것 같은데 집에 가도 된다 등등 나를 때릴 궁리만 하던 새우라면 담임의 작은 눈과 뽀글 파마는 나를 격렬하게 싫어하는 티를 라면 냄새처럼 듬뿍 듬뿍 내었다. 담임이라도 때리고 퇴학 당하는 상상을 했다.
이상스레 수업에 집중이 되었다. 대입까지는 앞으로 1년 반. 좋지도 않은 머리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내가 맞은 수치심이 가실 것 같았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건드리지 않던 수학 정석을 넘기면서 부끄러움도 뒤로 넘기고 싶었다. 잔기침이 날때 마다 갈비뼈가 쑤셨고 짜증이 나자 용기가 생겼지만 학교에서 까지 드잡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몇일이 지나 현이 찾아 왔다.
문을 열자 뽀족한 턱을 가슴에 붙이고 눈을 올려다 보며 '오랜만' 이라며 방엘 들어 왔다.
족발 특유의 한약재 냄새와 담배냄새, 술 삭은 냄새가 같이 들어왔다.
'집에 가게?'
'어. 몸은 좀 괜찮고?'
'왔다 갔다며?'
'어. 들었어? 주디 다물고 있으라 그랬더니'
'가자'
안채에 가서 몰래 아빠 머리맡에 있는 쟁반에서 담배와 책 사이 어디쯤에서 오토바이 열쇠를 꺼냈다. 그냥 알고도 모른척 할거라는 심증은 있었지만 괜히 말을 해서 사실로 만들 필요도 없는 작은 일탈이였다.
꽤나 쌀쌀한 바람을 뚫고 장갑안의 손이 냉기를 견디기 힘들 무렵 현의 집에 도착했다.
'안들어와?'
'술마시기엔 아직 몸이 좀 그래'
'안동네 애들 일 때문은 아니고? 니한테 해줄게 없어서 그랬지'
'아니 괜찮아. 이래 저래 병신 되기는 한가지라 차라리 그짝이 나아. 다음에 애들이랑 같이 보자.'
'그래. 가라'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게 낯설었다. 친구 같은 것을 원해서 생겼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깔끔히 비워낸 술병 줄을 세우듯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현의 호의도 빈병 박스 술병 채우듯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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