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단편소설 - part2

by 불은돼지

첫번째 망명


학교는 나에게 공부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동네 친구 세명이 나를 왜 창고에서 다구리를 놨는지 이해가 되었다. 오랜 세월 난 이방인이였던 거였다. 그렇다고 치면 참 오래도 참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왠지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좀 싫어 졌고 이 곳을 영원토록 떠나고 싶었다. 타인에게 나란 존재는 어차피 이물감으로 남아 있을거고 그 느낌을 내가 참아내느냐의 문제만이 숙제로 남는다.


두툼한 문제집을 하루에 한권씩 풀었다. 책값이 많이 들었지만 다 푼 문제집을 대청 마루에 보란 듯이 던져 놓았다. 얼마뒤엔 책 값에 뭘 잘 사먹으라며 돈이 보태어 졌다.


수능 시험을 쳤고 채점 방송을 보지도 않고 화살처럼 튀어나가 오래간만에 술을 마셨다.

내 뒤통수에 아버지의 말이 와서 꽂혔다. EBS에서는 수능 문제풀이가 방송 되고 있었다.

'공부는 못해도 놀기는 잘한다아~~~~'


현은 시험을 보지 않았다고 했다. 졸업장만 있으면 된다고 했고 이제는 온전히 시급을 다 받을 수 있고 돈을 모아서 대학도 가겠노라고 빈병이 포장마차에 줄을 세울 무렵 호기롭게 뱉었다. 그리고 역 앞에서 우르르 몰려 다니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그러다 홍등가까지 간줄도 모르고 지나가던 건달들에게 따귀를 맞았다. 머리 숫자 따위는 아이들끼리 시비가 붙었을때나 유효한 것이였다.

'아 씨발!' 을 붙인 현은 몇대를 더 맞았고 우리는 잘못했다며 빌면서 씩씩 거리는 현을 떠매고 도망쳤다. 얼굴을 잘 기억해 두었다. 행여 다음에라도 마주치지 않을려고. 그리고 그 다음주에 현은 학교를 때려 쳤다.

난 그 사실을 대학교 입학 쯤에나 알게 되었다.


본고사를 준비하는 애들 말고는 시한부적인 무료한 날들이 계속 되었다. 왠지 대학에 가서도 이런날들이 계속 될 것 같은 착각속에서도 나의 존재는 억지로 피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 있어서 학교에 있는 시간이 힘이 들었다. 밤이면 술을 마시고 낮에 학교에서 잠을 자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두세군데 씩 대입 원서를 들고 점수별 지원 가능 대학을 알려주는 책자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그렇게 열심히들 '대입'에 열들을 올렸지만 나는 '국문과'를 가고 싶어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뭐 국문학과?'

'응'


이 대화를 끝으로 나는 흠씬 두들겨 맞았다. 때리다가 탄력 받은 아버지는 어디 저장해둔 힘이라도 있는지 스태미너가 떨어질만 하면 다시 처음의 충격으로 새로고침했다. 그리고 담임한테 전화해서 '경영학과'로 원서를 쓰겠노라고 했고 하향 지원으로 말하는 담임에게 '그래도 여기는 가야 되지. 쓰레기통에 다닐수는 없죠'라고 아들의 성적에 믿을 수 없는 처절함을 보여 줬다. 안방에서 나오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나와서 내 얼굴을 쓰다듬어 줬다. 그리고 용돈을 쥐어 줬다.


학교에 가서 원서를 쓰고 가방에 잘 담아 놓고 우리 동네 삼인방에게 창고에서 보자고 했다. 얼핏 망설임과 공포가 같이 스쳐가는 놈들에게 '나 혼자야'라고 안심 시켰다.


'그렇게 꼴 보기가 싫었냐?'

'야 때릴거면 빨리 때려'

'붙자. 한명씩'

'야. 현이 또 올거 아냐?'

'뭐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내가 그런거 아냐. 얼른 붙어. 다구리 놓지 말고'


말을 계속 이어가면 마음이 약해질것 같아서 규재의 뺨을 쳤다. 그러고는 한데 엉켜 땅바닥에서 한참을 굴렀다. 도영과 선철이 우리 둘을 떼놨다.

다시 달려 들었지만 온몸에 힘이 남아 있질 않았다. 양팔을 하나씩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팔을 뒤틀었다.

맞는게 억울했는데 이젠 맞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이젠 저놈들과 나 사이에 휴전선이 아닌 국경이 그어 졌다.


이래 저래 난 이 동네를 떠나야 했다. 난 내가 그렇게 외면 받아야 할 이유를 몰랐다. 마냥 삶이 즐거웠다.

그전의 생활로 돌아 간다는 것은 신에게 기도하는 것 만큼 멍청한 짓이다.


오랜 시간 '나'라는 것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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