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조금 나눠 둔다.

단상

by 불은돼지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는 일본에서 시작했다. 그것도 대를 이어 연구를 하고 있다. 대를 이어 유사과학으로 꿀 빨고 있는 중이다.

MBTI도 70년대 중반 개발 되었다고 했지만 이상하게 잘 맞았다. 유형도 여러가지 인데다가 3%에 속하는 내 유형 또한 어느 부분 수긍이 갈 정도로 비슷했다. 사실 이게 사주 보는 거랑 비슷하다.

그 유형에다가 나를 끼워 넣으면 다 맞는 말 처럼 보인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어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한참을 그대와 나의 MBTI로 서로 비웃어가며 혹은 나름 잘 맞는 궁합이라며 둘다 왕따라며 놀았다. 그런데 조금의 문제가 보였다. 이 유형에 따라 나의 성격을 조금 맞춰 간다고 할까?

그러고 싶지 않지만 더 시니컬한 척을 하고 쎈말을 하게 되는 경향성이 발전한다고 할까?

원래 남들 일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일부러 더 없는 척을 하고 더 많은 거절을 하고 자연스럽지 않으니 불편함이 남는다.


왕따스런 이 생활에도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야 언제 시간 되냐? 너 시간 될때 갈게”

“꺼져. 운동할 거야. 술도 못 쳐먹는게 들이대고 지랄이야”


구박과 핍박을 뚫고 가끔 오는 친구 새끼를 비롯하여 술이며 밥이며 약속을 청해 오는 주변인들이 있다.

대게는 친구 새끼거나 광고대행사 시절 선배들과 대학 동문들이여서 나의 오랜 4가지 없는 말투에도 마상을 입지 않는다. 오~~~랜 거절로 개체 수를 많이 줄이긴 했다. 또 그것이 불편하다거나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때는 스스로 대견해 했었다.

살아봐야 100년 인생 좋은게 좋다고 좋은 말만 하기에도 짧다고. 그것도 에너지가 있을 때 가능하겠지. 그래서 '기분에 맡길게요'라고 살아 봤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였다. 거절을 하기 시작한 것도 오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몇번 해보니 사는게 훨씬 수월했다. 예전엔 어떤 부탁이든 거절을 잘 못했다. 결핍에서 오는 인정 욕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이렇게 거절을 많이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입에 싫어, 안해를 달고 살았다. 한번은 그대에게 물어봤다. 이러다 다 친구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그랬더니 다 없어져도 자기만은 남아 준다고 하길래 나의 거절은 부스터를 달게 되었다.


만날 사람은 만난다고 그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연락이 중단 되었던 사람들을 한 둘 만나게 되었고 그 시간만큼 관계의 거리가 생겼다. 주먹을 뻗어도 닿지 않을 거리가 자연스레 생겼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가까워 진다 싶으면 내 주둥이는 제법 매서운 선빵을 날렸다. 특히 인간관계는 권투일리가 없다. 손을 내밀어 줘야 하는데 난 주먹을 내민다고 할까?


손을 내미는 방법, 화해를 하는 방법, 그 전에 괜찮은 사과를 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어떤 관계든 파탄은 쌍방의 과실 여부로 발생된다. 일방적이라는 것은 없다.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은 뭔가 말하지 못했거나 듣지 못했거나 하는 다분히 개인적인 특성이 대화의 갈래길에서 길을 잃는 것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공감대 있다면 조금 용감한 사람이 사과를 하게 되어 있다.

손을 잡아 끄는 힘 정도는 있어야 하지만 그게 쉬운일은 아니다. 뭔가 세련되고 유려한 사과는 없다. 마음에 솟아 있는 돌뿌리를 뽑아 들고 보여 줘야 한다.


하덕규 시인도 노래했다. 내속에 내가 너무나 많다고. 그 많은 나들이 사과를 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미리 나를 나눠 둬도 괜찮겠다. 내가 좋아하는 잡곡밥을 짓기 위해 미리 섞어 두지 않는 것처럼 조금 조금 담아 두고 그 따뜻하고도 달큰한 밥 짓는 냄새를 조금 여러명이 둘어 앉아 수저를 들고 기다리는 모양새라면 더 할 나위 없겠다.


손을 잡아 끌기 보다는 뻔한 의자지만 먼지를 털어 내어 두는 편이 좋겠다. 그 후의 일은 나의 영역이 아니기에 그저 내어둘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삶이 조금 덜 억지스러워 진다. 그리곤 스스로에게 말랑해진 마음으로 거절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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