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part 3
방수된 바구니의 아기
부정하게 아이를 낳게 되면 방수된 바구니에 아이를 강물에 흘려 보냈다. 극한의 확률의 생존에 자기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행위는 스스로의 생존으로 보상 받는다고 생각한다. 죄책감은 기억력이 좋을 수록 심해진다.
대학 입학은 새로웠다. 새로움은 지난 날들을 지워 버릴 것 같이 몰려 왔다. 혹시나 대구집 근처 친구들이 있을까 했지만 그럴일은 없었다. 이쁘기로 소문난 이 캠퍼스는 심심해서 두번 놀러 왔었지만 내가 이 학교를 다닐줄은 몰랐다.오리엔테이션이라고 강당에 모아 놓더니 바로 버스에 태웠다. 1박2일 이라고 했다. 구멍난 양말을 신고와서 난 그냥 집으로 갔다. 이쁜 캠퍼스, 빈머리 학생이라며 비웃던 나는 여기서 처절하게 살아내야 할 것 같았다. 수강신청이라는 것을 했고 여유로웠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만 먹었다. 그나마 막판 스퍼트에 재수가 좋아서 이 학교나마 온 거였다.
이름 덕분에 1번이였지만 사람을 사귀는데도 첫번째 손가락에 꼽힐 느낌 이였다.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온 후로 아이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녔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혼자 지냈다. 집이 가깝기도 하고 할머니는 뜨신 밥을 먹어야 한다며 꼭 먹어야 할 점심을 지어 내셨다. 좋은 핑계가 생겼으니 꼬박 꼬박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모두가 나를 알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 왔다. '니가 1번이라며' 를 누구나 지나가면서 던졌다. 인사만 나누었다가 끼기도 서먹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항상 열람실이 문을 닫으면 공부를 했다. 꽤나 알찬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혼자 다닐 때면 발가 벗고 다니는 것 같았다. 새벽 일찍 학교를 왔고 저녁이 늦어서야 집엘 갔다.
현에게 삐삐가 왔다. 구미에서 십장을 맡았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고 있고 대구와서 술 한잔 거하게 사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현규가 유신학원 뒷편에서 자취를 하며 재수를 시작했다고 했다. 방도 2개 라며 이번 주말에 만나자고 했다. 다만 난 아직 외박 허락을 받아야 했다. 조부모님은 아직도 나를 애 취급을 해서 어딜 가던지 미리 보고를 해야 했고 좀 멀리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만원짜리를 쥐어 주시곤 했다.
연락이 무척 반가웠지만 긍정의 대답을 짧게 남겨 놓고 즐겁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자취방도 궁금하고 옛날 처럼 막 놀던 시절 생각도 나면서 설레었다.
유신학원 뒷편에 그런 오래된 상가 아파트가 있는 것을 몰랐다. 6.25시절 피난 왔던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던 대봉동 골목은 95년 당시만 해도 새마을 운동의 분위기가 물씬 했다. 을씨년 스런 중정형 상가 아파트
1층에 현규의 자취방이 있었다. 식당으로 쓰던 1층은 거실로 개조되어 있었고 복층처럼 허리를 낮춰 올라가야 하는 2층이 있었다. 편안함이 몰려 왔다. 주변엔 제법 비싼 중국집이며 선술집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걸 알고만 있었지 막상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만리장성'은 가볼 엄두를 못내고 근처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켜 술을 마셨다. 보통은 면을 먹고 국물을 남겨 안주를 했지만 현이 탕수육을 추가 했다.
'마이무라'
돈 버는 친구의 소회를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