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선, 모서리

essay

by 불은돼지

이제 막 사회생활에 점을 찍었을 무렵 대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라는 할머니를 만났다. 분양광고라는 일 때문에 만났지만 회장님이라고 불리던 그 할머니는 나름 위엄이 넘쳤다. 가진 돈 때문인가 어쩐가 나는 그냥 대단하게만 보였다. 대구에서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회장님 소리를 듣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음료가 나오고 같이 간 울 사장한테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이사장, 돈이 어데서 나오는 줄 아나?'

'네? 글쎄요......'

'모서리 있다 아이가. 요쪽은 사는 길 요쪽은 죽는 길, 항상 고 모서리에 돈이 있다'


그러면서 손끝을 마주쳐 모서리를 만들어서 코에 걸릴만치 올렸다 내리면서 돈이 어마 무지 많다는 할머니의 짧은 아포리즘이 끝이 났다.

그 모서리 모서리 마다 사는 길을 택해서 지금의 선을 그었을리라 짐작하며 더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 전 그 이야기는 나에게는 돈 보다는 관계로 다가 왔다.

작은 점 같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은 사람들과 만남으로 선을 이룬다. 그 선은 굳이 직선일 필요도 또는 직선일 수도 없었다. 그 굴곡으로 삶의 난이도를 판단하기도 했었다.

우리는 항상 구비지게 살아 간다. 수학적이지 못한 삶에 대한 한탄은 문과로 태어나서 그렇다며 퉁 치자.

선과 선이 만나 모서리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 X,Y 축이 만나 이룬 모서리는 추이라는 것에 따라 올라 가기도 내려 가기도 한다. 주식에서도 급상승, 급하강이 어려운데 사람끼리는 더 어렵다.


사람마다 능력이 있다. 처음 만남을 많이 하는 사람, 오래 두고 보다가 깊어지는 사람, 누구에게나 인기가 좋은 사람 등등.


나는 손절을 잘하는 편이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을 평생 참아오기도 했고 어떨때는 한두번 만남에 전화번호를 지우기도 한다. 사실 마음은 여린 편이여서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마음 먹은김에 손절을 하면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다. 또 나름 인간관계를 편식하는 편이여서 손절할 일이 잘 없지만 그래도 요즘 좀 말랑해졌는지 연락 끊은 사람들에게 미안 하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도 원하는 일이였을지도 모르니까. 또 퉁쳐 본다. 손절에는 많은 생각과 고민과 죄의식을 동반하기 때문에 몇 안되는 주변인들은 나를 성격이 모나거나 별나다는 말을 한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좀 억울하지만 설명하기 귀찮으니 넘어가자.


관계의 총량이라는 게 있어 만남의 횟수가 정해져 있다면 더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난 여기서 못 배운 문과 답게 '인생 운빨'이라는 랜덤을 적용해 본다. 알 수 없다.


다만 나와 결혼하신 분과는 어떤 균형의 모서리를 잘 이어 가고 있다. 옆에 있는데도 보고 싶어서 돌아 보고 떨어져 있어서 곧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고. 구비진 연애사를 이어 갈때 시리도록 그리운 느낌은 안들어서 훈훈한 결혼 생활을 잘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통장이 비수기다. 돈벼락 까진 아니어도 대출금, 차 구매, 아들 학원비 등등에 소비할 돈이 필요하지만 있을리 만무해서 돈 벌 궁리를 하다가 '모서리 회장님'의 이야기가 선뜻 떠올랐다.

허긴 그 할머니도 어쩌다 보니 대구 부자가 되었겠지. 부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남들이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부탁을 잘하고 얻어 낸다는 점이다. 소위 악덕 고용주 쯤 되겠다. 그렇게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부자가 될것인가? 라는 허무 맹랑한 상상을 하며.


내 안에도 다양성이라는 것을 키워 봐야 겠다. 이런 저런 사람들과 아무렇지도 않는 날씨 이야기를 해도 지루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럼 사람이 되고 싶다. 특별한 하루가 되기 보다 오히려 슈퍼마켓 비닐봉투 처럼 아무나의 손에 들려 덜렁 덜렁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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