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배운다- 대책회의 첫번째 글제 '필명'
"Goldlee'라고 불러 주세요.
처음엔 '골 때리는 놈'에서 '골때리'라는 별명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중앙공원에서 담배를 처음 피웠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한 갑을 피워 봤습니다. 그때 머리가 핑 돌아 옥상 계단을 내려오다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고 '골 때리는 놈' 이라 불렸을 때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생각을 먼저 한 게 아니라 '나를 주목하는 친구들이 생겼구나!' 였으니 골 때리는 놈이 맞았나 봅니다.
"OO씨 지금 여권 있어요?"라는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만?"이라는 말을 하자 마자 인천공항으로 가게 되었고 2박3일의 짧은 출장이라며 급하게 대신 다녀와야 한다고 하길래 서류 가방을 들고 정장만 입은 채로 갔었습니다. 태국의 푸켓공항은 후덥지근한 날씨보다 더 후줄근한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주며 웰컴 드링크를 어정쩡하게 받아 들고 호텔로 가는 길에 저는 제 인생을 생각없이 던져 버렸습니다.
"What's your name?" "My name is OO LEE." 이름을 물어보는데 잘 못 알아 듣는 내 본명을 그냥 영어로 물었으니 '골때리 보다는 Gold Lee가 글로벌하지. 암! 그렇고 말고'라고 즉흥적으로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다시 골때리가 되고 싶었었나 봅니다.
"Call me by 'Gold Lee'."
골리 골리 라며 부르는 직원들과 그렇게 불리며 웃는 제 모습은 다시 어릴적 골때리가 되었습니다. 부천에서 서울시청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아침에도 저녁에도 지하철 창밖으로 빌딩속에 가려진 유리창 밖 하늘을 바라보며 웃음도 장난스러움도 잃고 살았던 그때 '골드리라고 불러주세요.'라고 했을 때부터 저는 오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잃어버린 날들을 찾으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변명과 핑계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2년이 지나서야 결혼을 한다는 여자친구의 마지막 통보를 받고 급하게 돌아 왔습니다. 저와 하는 결혼은 아니었으니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흰색 반바지와 흰색 면티셔츠만 입고 돌아온 저를 인천공항은 겨울이 시작되는지도 모르는 새까만 얼굴과 새까만 팔다리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듯 했습니다.
친구 덕분에 대구까지 고속도로를 시속 100킬로의 속도로 내려갈 뿐이었는데 그 속도가 겁나서 오른쪽 윈도우 위에 있는 손잡이를 꼭 잡고 내려 갔을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나의 2년은 느리지만 깊었으며, 평화롭고 유연했었습니다.고속도로는 나를 단숨에 '꿈에서 깨어 나.'라고 하듯 잊었던 경적소리를 내 귀로 들려주었고 '왜 이리 느려 터진거야?'라며 소리치며 끼어들어 와 내 어깨를 밀치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여자친구의 집 앞에 가서 밤 새워 대화하고 밤 새워 설득했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말은 하지 않던 여자친구였음을 알고 있었습니다.어쩌면 나를 깨우려는 소리가 싫어 더 붙잡지 않았나 봅니다. 돌아가지도 꿈꾸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골드리는 가끔씩 불리는 닉네임정도였는데 작년 가을부터 책도 읽어 보고 글도 끄적여 보다 보니 이곳에서 제가 이렇게 제 필명으로 'Goldlee'를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옛 생각을 하며 추억팔이 사연팔이 하는 그저 그런 인간이겠지만 그때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달랐었고 다른 사람이었으니 글을 쓸 때만이라도 그때의 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를 그때의 그를 이제는 이렇게 불러주세요.
저를 '골드리'라고 불러주세요.